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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

    단어 옆에 서기

    문장의 경로를 개척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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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야구X수학

    야구로 배우는 재미있는 수학 공부
    평균, 확률, 경우의 수, 통계 등의 수학 개념을 WAR, 매직넘버, 샐러리캡, 중계권료 등 야구의 다양한 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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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6개의 단편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낯선 밤>꼬박 3대를 거슬러 올라간 죄와 벌의 이야기다.나치부역자, 일본군의 만행 등등인간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독자로서 이런 이야기 장르를 혼자서 ‘죄와 벌 장르’라 부른다. ‘죄와 벌 장르문학’은 가해자보다 피해자,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행과 불행, 기쁨과 슬픔, 죄와 벌이 그리 공평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슬픔이겠지....<낯선 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할머버지의 죄로 고통받는 것이 억울할 수 있지만 원래 ‘죄’라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기보다 선명해지는 법이다. 처벌받지 못한 죄는 그 자손이 융성하면 융성할수록 죄의 열매 또한 번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늘 기억투쟁이다.잊지만 않는다면 벌은 아무리 늦어도 도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잊지 않느냐다. <낯선 밤>의 기억하는 자는 오래도록 기다려 결국 효과적인 징벌의 세계에 도착했다. 도착 이후 번성한 3대의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개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뜬장>, 범죄자를 뒤쫓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자의 <칼과 새>등도 재미있었는데, 이 또한 죄와 벌 장르문학이다.이 책은 용인시에서 지원하는 독립출판물로 선정되어 묶여나온 소설집이라는데,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서점에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e북으로 밖에 없었다. 아쉽군...작가님의 건필을 응원하며 이북을 구매했다“저 할머니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는 것은 목구멍을 날카로운 칼로 쑤시는 고통이야. 그 고통을 나 스스로 피할 염치는 없지만, 누가 강제로라도 끝내주면 엎드려 절을 하고 싶어. 그러니 이제 당신이 그 칼로 나를 찔러줘. 부탁이야.” -칼과 새 중에서-할아버지가 그 오랜 세월 가족 한 명, 한 명과 빚어온 그 아름다운 시간들은 정녕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 아마 할아버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낯선 밤 중에서-

김굉필님

시경을 읽다 / 양자오

1 3천 년의 민가『시경』에 수록된 글은 노래의 특성이 아주 강합니다. 『시경』은 중국 문자가 가장 일찍 소리와 결합된 예이지만, 말이 아니라 노래와 결합되었습니다. 노래의 언어는 일상생활의 언어보다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반복이 많습니다. 게다가 명확한 소리의 패턴이 존재하지요. 장편서사시를 기록할 수 없는 복잡한 문자라 해도 네 글자가 한 구를 이루며 같은 구가 계속 반복되는 짧은 노래 정도는 받아쓸 방법이 있었습니다. 『시경』을 읽어 보면 중국의 문자 체계가 어떻게 언어에 접근하려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시도가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그 문자 체계가 어떻게 중국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도상기호와 소리 사이의 몇 가지 규칙을 수립했습니다. 다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문자와 언어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6)『시경』은 노래이자 가사입니다. 오늘날 유행가의 가사에는 요즘 사람들의 삶과 보편적인 가치관이 딱히 정확하고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역시 『시경』을 통해 주나라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시경』에 비교적 효과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은 주나라 사람이 노래를 부른 상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고, 어떤 정서와 내용을 담아 표현했을까요? 또 그들에게 노래에 담기에 적당한 사건과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시경』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전통의 늪에 빠지면 안 됩니다. 『시경』 「대서」大序와 『모시』毛詩 또는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의 해석을 보면, 『시경』의 모든 시가 ‘미언대의’微言大義의 성격을 갖고 있어 저마다 역사적 암시와 도덕적 훈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시경』의 작품에 불필요한 거리감과 혐오감을 갖도록 만듭니다. 18)# 미언대의微言大義 : 간단하지만 심오한 말로 큰 뜻을 암시하는 방식시,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는 서주西周 당시 귀족 교육의 핵심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서』書는 고대사로서 주나라 건립 과정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과 그 사건들에 대한 선현의 검토와 교훈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나라는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강대해 보였던 대읍상大邑商, 즉 상나라를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았으며, 이긴 과정과 이유 그리고 상나라 사람이 미신을 믿고 음주에 탐닉했다는 비판과 ‘천명天命이 무상함’을 경계하는 우환 의식 등을 『서』에 수록했습니다. 『서』에 대응하는 것이 『춘추』였습니다. 『춘추』는 당대의 역사이자 국별國別 역사였습니다. 여기에서 국國은 노魯·진晋·송宋 같은 봉국封國을 가리킵니다. 각 봉국의 역사가 수록되었는데, 연도를 크게 춘과 추로 나누어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기 일어난 큰 사건을 기록하는 무척 단순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춘추’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예』는 행위 규범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봉건 질서에 필요한 규칙과 의식을 모아 놓은 총화였지요. ‘예’는 맨 처음에는 문자와 경서의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적인 훈련으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공자 시대에는 아직 ‘예의 시연’에 대한 견해가 보편적으로 존재했지요. 『역』은 당시 귀족 교육에서 철학 교육에 해당했습니다. 주나라 사람은 줄곧 ‘천’天의 문제를 사유했습니다. ‘천’은 인간이 좌우할 수도 도모할 수도 없는 초월적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인’人은 일부였고 나머지 더 큰 부분이 ‘천’이었습니다. 우연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천’이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운명도 ‘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좌우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변수와 힘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해야 하는지가 철학 교육의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와 ‘악’입니다. ‘시’와 ‘악’이 과연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습니다. 고대 음악은 구체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20)『시경』 내용의 유래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채시采詩, 즉 시의 채집에 관한 설이 있었습니다. 서주의 ‘봉건’이 성립된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채시의 의미를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봉건은 어떤 종친이나 공신을 지정해 특정한 땅과 한 무리의 백성을 하사하는 것, 즉 봉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서 그에게 자기 백성을 데리고 봉지封地에 가게 했습니다. 그 땅이 바로 그와 그 후손이 대대손손 소유하는 봉국封國이 되었습니다. 봉국은 아마도 멀고 낯선 땅이었을 겁니다. 효과적으로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처음에는 군사력에 의지해야 했겠지요. 하지만 계속 군사력에 의지하거나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봉건영주는 반드시 그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그 땅의 민정民情을 잘 살피고 파악해 그들과 잘 지낼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지요. 채시는 그 땅의 민가를 채집하여 그 민가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수단이었습니다. 20-1)전통적인 『시경』 해석에는 여섯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풍아송’風雅頌과 ‘부비흥’賦比興입니다. 풍아송은 『시경』에 실린 시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이며, 부비흥은 『시경』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수법입니다. 풍아송은 시의 유래와 기능과 관련 있는, 주나라 시대에 존재했던 분류법으로 『시경』의 작품 자체의 차이에서 내적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비흥은 훗날 『시경』에 덧붙여진 설명이라 『시경』 자체와의 관련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부’는 어떤 일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비’는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이나 일을 비유하는 겁니다. ‘흥’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언급하고 이어서 어떤 일이나 또 다른 사물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양자 사이에 명확한 비유 관계가 없고 또 한눈에 알아챌 만한 관련성도 없습니다. 그 시구를 읊고 노래할 때 시인의 마음속에는 부비흥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개념을 적용해 작품의 형식을 제한했으니 정말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22-3)시경』에는 ‘풍아송’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고 내용도 가장 풍부한 장르가 ‘풍’입니다. ‘풍’은 민간 가요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채시와 관계가 가장 밀접하지요. ‘풍’은 ‘국풍’國風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가요들이 불린 봉국에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풍’에 속하는 시는 모두 160수로, 『시경』에 실린 전체 305수 가운데 절반이 넘습니다. 국풍 15편 외의 장르에는 먼저 ‘대아’大雅와 ‘소아’小雅가 있는데, 이것도 노래이긴 하지만 귀족 사이에서 손님을 초대해 연회를 열 때 불리던 노래입니다. ‘대’와 ‘소’는 자리가 얼마나 공식적인가에 따라 나누는 명칭입니다. 세 번째 장르는 ‘송’입니다. ‘송’은 확실히 구술 내용을 문인들이 정리한 집단의 역사 혹은 집단적 정신교육 자료입니다. 그 성격은 말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게 만든 『상서』의 구어판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송’을 낭랑하게 부르면서 거기에 담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쉽게 흡수하고 내면화했을 겁니다. 25)2 귀족의 기본 교재귀족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시경』을 읽고 『시경』의 시구를 줄줄 암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구들은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일종의 코드화된 언어가 되어, 직접적으로 말하기 불편하거나 부적합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했습니다. 더욱이 봉건제도에는 엄격한 상하 질서가 있어서 계층 간 존비尊卑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시구로 이뤄진 코드화된 언어가 매우 중요하고 또 유용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춘추시대 이후 갈수록 복잡해진 국가 간의 관계에서 코드화된 언어는 자연히 외교에까지 이용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전국시대만큼 그렇게 노골적인 ‘힘’과 ‘이익’의 추구가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예법이 일반 귀족의 행위를 고도로 구속하는 힘으로 작용했지요. 그래서 외교 현장에서 힘이 약한 나라가 봉건 예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강국의 침탈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37)외교적 절충에 관여한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귀족 교육의 수혜자였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갖가지 내용을 이용할 수 있었고, 예의를 지키면서 암암리에 힘을 겨루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가끔씩 『상서』와 『역경』을 끌어와 인용하기도 했지만 범위와 빈도 면에서 『시경』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행해진 ‘단장취의’(시의 일부를 완전히 다른 문맥에 끼워 넣어 이용한 것)는 후대 사람들이 『시경』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시경』의 시를 인용한 문헌 속의 수많은 기록은 훗날 중국의 ‘주석 전통’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장취의’가 낳은 의미들이 마치 그 시구의 본래 해석인 것처럼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시구가 정치 외교 분야에 옮겨져 쓰인 경우에는 각 시가 마치 정치적 도덕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해석되었지요. 결국 이로 인해 『시경』 「대서」의 ‘미언대의’라는 논리가 나와 독자에게 ‘대의’의 안경을 씌우는 바람에 시의 본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37-9)이런 입장에서 『시경』에 어떤 제재의 시가 실려 있는지 점검해 보면, 전통적인 해석과 정반대로 대다수의 시가 군주와는 무관합니다. 특히 국풍에 수록된 시와 소아의 일부는 전부 그렇습니다. 『시경』의 요체는 서민의 관심을 표현한 시입니다. 그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결혼과 가정, 그리고 이 두 가지와 관계된 의식儀式과 감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시경』을 읽으면 오히려 전통적인 독법보다 더 쉽게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어 주나라의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서민 사이에도 봉건 질서의 토대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가정과 결혼과 인륜이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가정이 으뜸이고 온 세상이 가정에서 확장된 거대한 질서 체계라는 것이 서주의 모든 계층 사람들이 공히 갖고 있던 신념이었습니다. 이것은 갑골문에 나타난 상나라 사람의 관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40)전통 독법에서 흔히 홀시되고, 심지어 일부러 무시하는 사실은 『시경』에 여성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관습적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가정, 감정에 관한 사연을 비유나 환유로 간주하고, 남성 작가가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해 위장한 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시에 많은 여성의 목소리와 감정이 반영되는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성중심주의의 하부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훗날 중국의 시사詩詞에는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특이한 전통이 줄곧 존재했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눈에 띄는 것이 규원시閨怨詩와 대부분의 사詞입니다. 작가가 남자여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 화자를 내세워 여성의 섬세하고 구슬픈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사가 본래 여성 가인歌人의 노래 가사였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에서 부정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오랫동안 은밀히 존재해 온 시의 오랜 장르적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40-2)# 규원시閨怨詩 : 남편이나 연인을 잃고 홀로 남은 여인의 한을 노래한 시3 서민 생활의 단편들▷ 「곡풍」谷風첫 구는 역시 자연현상입니다. 〈골짜기에 간간이 바람 불더니, 날 흐리고 비 내려요. 習習谷風, 以陰以雨.〉 그다음에는 바로 시적 화자의 토로가 이어집니다. 〈애써 한마음으로 살았는데, 화를 내면 안 되지요. 黽勉同心, 不宜有怒.〉 아마도 부부 간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순무를 뽑고 무를 뽑을 때, 뿌리만 뽑을 수 있나요? 采葑采菲, 無以下體?〉 ‘葑’(봉)은 순무, ‘菲’(비)는 무입니다. 모두 뿌리식물로 수확할 때는 반드시 땅 위의 잎을 당겨야 뽑을 수 있습니다. 이 시구의 표면적 의미는 순무와 무를 뽑을 때 잎과 뿌리를 같이 뽑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가를 수 없는데, 왜 마음을 함께하지 않고 늘 화를 내느냐는 것이지요.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 했잖아요. 德音莫違, 及爾同死.〉 ‘德音’(덕음)은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존칭입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고 해 놓고서 이제 마음이 변해 그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50-1)〈느릿느릿 길을 걷는 것은 가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行道遲遲, 中心有違.〉 이 부분은 첫 번째 구절의 첫 시구와 호응합니다. 그녀는 길을 가다 바람과 비를 만난 겁니다. ‘違’(위)는 부수가 ‘쉬엄쉬엄 갈 착’辵으로, 본래는 길을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背’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는 것이고, ‘違’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가는 겁니다. 그녀가 천천히 걷는 것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로 다른 곳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멀리는 고사하고 가까이라도, 문밖까지라도 나를 바래다주지. 不遠伊邇, 薄送我畿.〉 ‘伊’(이)와 ‘薄’(박)은 모두 뜻이 없는 어사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원치 않는 길을 떠나기 직전의 상황을 원망하는 어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떠나는 자신을 멀리까지 바래다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밖까지는 배웅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그녀가 집을 떠날 때 그녀의 남편은 문밖까지도 나와 보지 않을 만큼 무정했던 겁니다. 51)〈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나요, 달기가 냉이 같은데.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은 형제와도 같겠지요. 誰謂荼苦, 其甘如薺. 宴爾新昏, 如兄如弟.〉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하던가요? 지금 내 심정과 비교하면 차라리 냉이처럼 달콤한데 말입니다. 앞의 두 구는 이렇게 그녀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뒤의 두 구는 형제가 같이 지내듯 자연스럽고 친밀한 신혼의 기쁨을 거론합니다. 그녀는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즐거운 신혼을 보았고, 그래서 못 견디게 마음이 괴로워진 겁니다. 〈경수가 위수 때문에 흐려 보여도 맑은 물가가 없지 않은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아껴 주지 않네. 涇以渭濁, 湜湜其沚. 宴以新昏, 不我屑以.〉 ‘경위분명’涇渭分明은 경수와 위수라는 두 강이 합쳐질 때 경수는 탁하고 위수는 맑아 기이한 경관이 연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맑은 위수와 비교해 경수가 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경수에도 맑은 물가가 있는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녀를 눈엣가시로만 보고 내쫓았다고 말합니다. 52)이제 우리는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임을 깨닫습니다. 남편이 새 아내를 얻어 그녀를 집에서 쫓아낸 것이지요. 쫓겨난 그녀는 머뭇머뭇 길을 나섰는데, 남편은 심지어 문밖까지도 배웅해 주지 않았습니다.경수와 위수의 두 구로 인해 비유적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남편의 새 여자와 비교하면 그녀는 몹시 늙고 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젊고 예쁜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시의 정서는 줄곧 애처로웠지만 갑자기 다르게 바뀝니다.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毋逝我梁, 毋發我笱.〉 이것은 명령투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어살에 가지 말고 또 그녀가 놓은 통발도 열지 말라는군요. 괘씸한 남편의 새 여자를 향해 자기 물건과 물고기에는 손도 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금세 사라지고 슬픔과 괴로움이라는 무기력한 감정이 되돌아옵니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 我躬不閱, 遑恤我後.〉 52-3)이어서 새로운 화제가 등장합니다. 〈깊은 물 건널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타고 얕은 물 건널 때는 자맥질하고 헤엄쳤지요. 就其深矣, 方之舟之. 就其淺矣, 泳之游之.〉 이 네 구는 사실의 기록일 수도 있고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의 기록이라면 그녀가 강변에 살던 시절의 회고에 해당합니다. 강을 건널 때, 물이 깊은 곳에서는 뗏목이나 조각배를 타고 얕은 곳에서는 헤엄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유로 읽으면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집안일을 돌볼 때 발휘했던 솜씨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이어집니다. 〈집에 무엇이 있고 없는지 살펴 애써 갖추려 했고 이웃이 상을 당하면 있는 힘껏 도왔어요. 何有何亡, 黽勉求之. 凡民有喪, 匍匐救之.〉 그녀는 집안일을 살뜰히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도 서둘러 달려가 힘을 보태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53)〈당신은 내게 감사하기는커녕 거꾸로 원수로 여기고 내 미덕을 무시하고 안 팔리는 물건 취급을 했지요. 不我能慉, 反以我爲讎. 旣阻我德, 賈用不售.〉 ‘慉’(휵)은 ‘마음 심’心에 ‘축’畜 자를 덧붙인 글자로 감사를 마음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화자는 남편이 자신의 좋은 점에 감사하는 대신, 오히려 자기를 원수로 보고 마치 장사꾼인 양 팔지 못할 물건 취급을 했다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두렵고 가난하여 당신과 어려움을 함께했는데 사정이 좋아지니 나를 독약처럼 대했지요. 昔育恐育鞫, 及爾顚覆. 旣生旣育, 比予于毒.〉 첫 구의 ‘育’(육)은 어사입니다. 옛날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두렵고 가난한 세월을 보내며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세 번째 구의 ‘生’(생)과 ‘育’은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앞뒤에 아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떠나는 그녀의 심정에도 아이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단지 가세가 점차 좋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를 독약처럼 적대시했습니다. 53-4)〈내가 맛있는 채소를 저장한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였지요. 我有旨蓄, 亦以御冬.〉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은, 그녀가 남편이 겨울을 잘 나도록 채소까지 말려 잘 저장해 두었다는 겁니다.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을 누리려 나를 이용해 가난을 면했군요. 宴爾新昏, 以我御窮.〉 그녀는 그토록 노력해 가세를 호전시켰지만, 남편은 그것을 이용해 새 여자를 들여 자기 욕심만 채웠습니다. 볼수록 점입가경이로군요. 〈매섭게 화를 내며 내게 힘든 일만 시켰는데 옛날을 잊었나요, 내가 처음 시집왔던 때를. 有洸有潰, 旣詒我肆. 不念昔者, 伊予來墍.〉 남편은 걸핏하면 그녀에게 화를 내고 일부러 힘든 일만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녀는 자기가 시집오자마자 치렀던 ‘기’墍라는 풍속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아직 시집의 모든 것이 낯선 신부를 3일 혹은 30일간 집안일에서 빼 주고 적응기를 갖게 하는 풍속입니다. 그녀는 슬픔이 사무쳐 말하지요. “당신은 내가 처음 시집와서 ‘기’를 치르던 나날을 잊었나요?”라고 말입니다. 54-5)이 작품은 이혼에 관한 이야기시로, 막 집을 떠나온 이혼녀의 처지와 심정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제재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동한東漢 시대의 장편 악부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 역시 이혼한 부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그런데 「곡풍」의 이야기는 「공작동남비」에 비해 간략하기는 하지만 더 극적인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모두 틀림없이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갑자기 매서운 분노의 말투로 남편을 빼앗아 간 여자를 상상 속에서 꾸짖습니다. 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자기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력한지 깨닫고 현실로 돌아와 “나는 집에서 쫓겨난 신세인데 어살은 뭐고 통발은 또 뭐람?”이라고 울적하게 혼잣말을 하지요. 이런 감정의 전환은 변심한 남자를 탓하는 다른 말보다 훨씬 더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게 만듭니다. 대단히 섬세한 문학적 수법입니다. 55)▷ 「정녀」靜女「곡풍」이 결혼의 파경을 노래했다면 「정녀」는 사랑의 시작을 노래했습니다. 역시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성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네. 靜女其姝, 俟我於城隅.〉 ‘靜女’(정녀)의 ‘靜’은 여기에서는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쁘다는 뜻입니다. ‘姝’(주)도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이 두 글자가 교차하면서 아가씨의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고 있지요. 예쁜 아가씨가 ‘나’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성 모퉁이에서 은밀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서두는 흥분되어 가슴 뛰는 젊은 남자의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는 서둘러 달려갑니다. 〈어두워 보이지 않아, 머리 긁적이며 배회했네. 愛而不見, 搔首踟躕.〉 여기에서 ‘愛’(애)는 어둡고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曖’(애)와 통합니다. 남자는 벅찬 기대를 품고 성벽 가장자리의 은밀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둑어둑한 그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지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합니다. 61)〈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내게 붉은 대통을 선물해 주었네. 붉은 대통 근사하기도 해라, 네가 아름다워 기쁘구나. 靜女其孌, 貽我彤管. 彤管有煒, 說懌女美.〉 ‘孌’(연)은 ‘姝’처럼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붉은 대통을 선물로 주었지요. 그 선물을 받고 남자가 칭찬하길, “붉은 대통이 너무 아름답네. 네 아름다움이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붉은 대통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아가씨를 찬미하는 겁니다. 〈들판에서 삘기를 가져다주었는데, 정말 예쁘고 특이하네.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가 선물해 줘서 그렇다네. 自牧歸荑, 洵美且異. 匪女之為美, 美人之貽.〉‘歸’(귀)는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이 아가씨는 아마도 성을 나와 산보를 하는 틈을 타 몰래 연인을 만나 붉은 대통을 선물하고, 그러는 김에 막 딴 삘기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61-2)# 삘기 : 띠의 어린 꽃이삭.이것은 감정이 이입된 결과입니다. 그 아가씨를 본래 좋아하는 데다, 방금 전 그녀를 못 찾아 당황하다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자 뛸 듯이 기쁜 감정이 사물에 투사된 것이지요. 아무리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이라도 이때 그에게는 특별한 광채를 띤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것은 사랑과 행복의 광채였겠지요. 이 시는 세밀한 인과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아가씨가 기다리는 줄 몰랐다면 남자는 그렇게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잠시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타났을 때 그렇게 뛸 듯이 기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어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과장해서 그녀의 선물을 칭찬하지도 않았겠지요. 먼저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온 선물을 칭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가 오다가 딴, 별로 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삘기도 칭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삘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가씨의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짧지만 교묘한, 훌륭한 시입니다. 62)

nana35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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