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티스트의 무덤' 몇 개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묘비엔 한때 사랑했으나 이제 사는 동안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이의 이름들이 적혀있다.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것은 해묵은 토론 주제이지만 늘 비슷한 결론에 닿곤 한다. 그를 캔슬 하기, 혹은 그의 존재와 작품을 별개로 보기. (범죄자를 숭배하는 이들은 논외다.) 대체로는 전자를 택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의 마음이라는 것엔 어딘가 오묘한 지점이 있어서 언제나 철문 닫듯 쾅 닫히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배신의 충격을 추스르고 나면 일상에서 슬며시 생각나는 것이다. 내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과 범벅된 그의 몇몇 작품이...
이 책은 여기서 시작한다. 괴물임이 밝혀진 예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때때로 감탄하게 되는 자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클레어 데더러는 괴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그들의 작품과 괴물성, 그리고 그것들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소상히 서술한다. 대부분의 현실과 윤리의 문제가 그렇듯 논증 끝엔 또 다른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 위험하고 어려운 질문들의 꼬리물기 앞에서 데더러는 움츠러들지도 가면을 쓰지도 않은 채 대답을 저벅저벅 이어간다. 두려운 질문임이 분명한데도.
그는 이제 괴물들에 대해 우리가 가진 커다란 한두 개의 선택지, 그 사이에 질문 보따리를 여러 개 만들어두었다. 캔슬 뒤에 남는 찜찜함, 자기 자신의 가해자성, 천재라는 개념이 만들어내는 환상 등에 대해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풍성하게 남았다. 클레어 데더러의 용감함이 만들어낸 자리다. 괴물들은 사라질 것 같지 않고, 우리 사회의 논쟁이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 때를 맞이했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 차원의 문을 열어줄 책이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언제나 윤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일련의 결정이 내려진 다음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무엇이 올바르고 윤리적인 행동인지 스스로 해석해야만 한다.
한국문학의 자장 안에서 태동한 작품이 2024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한강 작가는 <작별>로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정되면서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도 한국 작품에 대한 판권문의가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2024년 한국문학의 성취를 되짚는 기획, 김유정문학상이 제18회 수상작가를 호명했다. 페르난두 페소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기도 하며 세계 문학의 잎사귀를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전해온 소설가 배수아가 신화 속 인물 '바우키스'에서 뻗어나가는 나무 같은 이야기로 수상했다.
그때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자라나는 잎사귀를 보았습니다. 또 필레몬도 아내 바우키스의 몸에서 자라는 잎사귀를 목격했습니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나그네를 정성스럽게 돌봐준 덕분에 한 날 한 시에 나무가 되는 복을 얻은 아내 '바우키스'와 남편 '필레몬'의 일화가 소설 속 '나'와 '모형 비행기 수집가'의 이야기로 변용된다. 배수아의 소설답게 '최근 몇 년 사이 친구들이 사방에서 미친 듯이 죽어가고 있다고'(43쪽) 같은 문장이 반복하며 겹겹의 의미가 쌓인다. 단 하나의 어휘를 입에 문 채 애도하며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아름다운 소설. 다 읽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차오른 감각이 어른거린다. 문지혁, 박지영, 예소연, 이서수, 전춘화의 수상후보작이 함께 실렸는데 중국 교포 작가인, 20대 조선족 여성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전춘화의 소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국경을 벗어난, 세대를 넘나드는, 계급을 사유하는 현재적인 소설과 함께 한국문학이 지금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마침내 나뭇가지가 얼굴을 뒤덮기 시작한 최후의 순간, 일생 동안 내 입에서 살던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다.
베스트셀러 <열세 살의 걷기 클럽> <헌터걸>을 집필한 김혜정 작가가 '돈으로 시간을 사고파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책의 배경은 최첨단 미래 세상. 어느 유전자 연구팀이 시간 유전자를 발견해, 시간 유전자의 DNA를 타인에게 이식하는 '시간 유전자 이동' 기술을 개발했고, 타임 스토어는 '시간 유전자 이동' 기술을 토대로 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시간 관리사이자 시간 유전자를 팔아서 부유해지고 싶은 엄마, 시간 유전자의 사고파는 행위에 회의감을 느끼는 아빠, 엄마가 짜준 스케줄에 맞춰 영재 학교 입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호, 타임 스토어를 창립해 막대한 부와 무한한 생명을 얻게 된 미스터 유, 메모리 D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사는 세랑 누나. 캐릭터 분명한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시간 유전자와 이동 기술을 둘러싼 음모, 불법 거래소의 실체 등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게 펼쳐낸다. 더 나아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을 비틀고 꼬집으며 독자들에게 묻는다. "시간을 팔아 부유한 사람이 될 것인가, 돈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가치와 행복을 선택할 것인가." 유니크한 소재와 흡입력 강한 스토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책이다.
- 어린이 MD 송진경
이 책의 한 문장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분명히 있어. 타임 스토어 때문에 너만 한 아이들이 시간 유전자를 팔기도 해. 그 아이들에게도 이 세상이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하는 의사 기사야마 세이타는 스스로 의아할 정도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배우 출신의 아내 기키는 여전히 지역방송국의 TV 드라마나 CF 등에서 활약 중이고, 첫째 딸 마후유는 학업과 동시에 얼굴을 숨긴 채 음악 유닛의 보컬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는 중이었다. 둘째 딸 아야카 역시 지병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기사야마는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무리 행복한 가정도 단 하나의 작은 균열로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가족을 지키려면 어떤 균열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 균열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다.
일본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작. 작가의 전작 <명탐정의 제물>에 이어 2년 연속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를 차지했다. 잔혹하고 엽기적이며 기괴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독자로 하여금 눈을 질끈 감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거듭되는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로 결말에 이를 때까지 긴장감과 몰입감 속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다양한 장르적 설정과 맞물려 탄생한 파격적인 작품.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한번 망가진 것은 제아무리 애를 써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깨진 그릇이 금간 곳 없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일은 없으며, 그것은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그것이 망가지기 전에 균열을 막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