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산문과 객관화된 글쓰기"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주목받는 페터 한트케의 산문집. 그만의 실험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통적 서술 방식으로 문학의 서정성을 회복한 작품이다. '소망없는 불행'(1972)과 '아이 이야기'(1981)를 묶었다.
'소망없는 불행'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찰한 수필이다. 제목 '소망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삶을 일축한 표현.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반복되는 가사일에 구속되었던 어머니. 젊은 시절엔 가출과 여행으로 다른 삶을 꿈꿨지만, 결국은 여느 주부들처럼 가난에 찌들어 사치마저 꼼꼼히 관리했던 어머니. 섹스 혐오증과 남편과의 불화로 신경쇠약을 앓던, 자살하는 저녁까지 평상시 같았던 어머니.
페터 한트케는 이 모든 것을 차갑게 묘사한다. 체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서술. 그럴수록 어머니의 삶은 생생하게 살아나 몸과 마음을 육박한다. 그 외로움과 절망감이라면 나라도 자살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 '소망없는 불행'은 그토록 혹독하고 대차다.
'아이 이야기'는 3인칭의 시점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던 일을 회상한 작품. 아내와 결별한 후, 딸 아미나를 맡아 키우며 느꼈던 순수한 기쁨을 적었다. 어쩜, 이렇게 객관화된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을지 짐작이 가는 글이다.
사실, 이 산문은 강같은 기쁨에 흠뻑 젖어있다. 폐허로 가득찼던 그의 어린 시절이, 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딸로 인해 천지개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절제된 문장은 피터 한트케의 문학성을 한층 더 빛낸다. 소설처럼 읽히는 이 수필이 있어 <소망 없는 불행>은 다행히 불행을 면했다. - 최성혜(200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