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일상. 밤새워 일한 후 부스스 일어나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다. 집은 쓰레기가 쌓여간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던 청년은 공원에 모여든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걸 구경한다. 저들은 무얼 보고 있는 걸까? 헤드셋을 벗어 가만히 귀 기울이니 새 소리가 들린다. 공원의 행인이 빌려준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파란 새가 한 마리 보인다. 파랗고 파란 새.
독립 출판물 <낮게 흐르는>에서 독보적인 이미지 연출과 수채 그림 스타일을 선보이며 그래픽 노블 애호가들의 남다른 주목을 받은 변영근 작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2020년 무렵,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립된 청년이 새를 관찰하며 변화하는 내면 이야기를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었다.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작은 것을 발견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새소리와 햇빛을 아스라이 부수는 나무들의 흔들림, 하늘을 수놓는 큰 구름. 대사 한마디 없는 이 책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책을 펼쳐본 독자라면 반드시 알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