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 명문 대학을 다니다 징병되어 전쟁을 몸소 겪은 모토로이 하야타는 환멸에 휩싸여 있다. 한때 믿었던 모든 것이 조국의 침략 야욕이었음을 깨달았고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거대한 물음표가 되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국가 재건을 위한 노동의 최전선에 몸담기로 한 하야타이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를 읽고 광산 노동자가 되기 위해 향한 탄광에서 '검은 얼굴의 여우'가 출몰하는 기괴한 사건을 겪고 겨우 탈출했다.
하야타가 두 번째로 향한 곳은 해운의 중심이자 근대화의 상징인 등대다. 그가 탄 배를 산산조각 낼 것만 같은 거친 파도와 짙은 안개, 기암괴석 사이 하얀 등대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등대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가달라는 하야타의 부탁에 어부는 뭔가 숨기는 듯한 표정으로 도저히 안되겠다며 여관으로 데려다준다. 신임 등대지기로서 늦지 않게 도착하고 싶은 하야타가 걸어서라도 등대로 가겠다고 하자, 어부와 여관 주인 모두 한사코 말린다. 해가 진 후에는 절대로 혼자서 숲을 통과해선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이들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하야타는 탄광에서 느낀 불길하고 꺼림칙한 예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감지한다. 미쓰다 신조가 "‘도조 겐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모토로이 하야타’를 탄생시켰다."고 말한 '방랑하는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최신간. 철저한 고증으로 생생하게 재탄생한 역사와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 치밀하게 쌓아 올린 추리의 하모니에 몸을 맡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