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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첫 소설집 <강산무진>을 낸 이후, 16년 만에 엮는 김훈의 두번째 소설집. 2020년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당시 김훈은 심장질환을 겪으며 산소호흡기 투병을 경험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말하던 소설가의 눈은 이제 피안 너머를 본다.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고 소회를 밝힌 김훈이 보는 삶의 풍경들.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은 <명태와 고래>다. 명태라는 생물은 참 묘한 것이어서, 오호츠크해를 자유로이 오가던 이 생물이 어느 바다에서 잡히느냐에 따라 국적이 결정된다. 이춘개씨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에는 선이 없는데, "전쟁이 끝나자 향일포와 어래진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28쪽) 북쪽의 고향 어래진을 떠나 남쪽의 향일포에 자리잡고 고기잡이를 하던 이춘개씨의 배가 조류를 타고 어래진 포구로 흘러들어간 이후, '경계인'이 된 그의 삶은 운명에 휩쓸려 피안을 오간다. 한편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은 <저만치 혼자서>.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수녀원에 모여 살게 된 수녀들은 허물어지는 자신의 몸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수감되고, 병을 얻고, 치욕과 불의를 견디는 삶. 이 도저한 비극을 '저만치 혼자서' 유한한 인간의 몸으로 어찌할 것인가. 김훈은 이제 그 삶에 손을 내민다.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을.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