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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뇌르. 도시를 걸으며 관찰하고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남성 명사다. 저자 로런 앨킨은 이 단어를 여성형으로 바꾸어 스스로에게 붙인다. 플라뇌즈.
호명은 존재를 가시화한다. 앨킨은 "마치 페니스가 지팡이처럼 걷는 데 꼭 필요한 부속품이라도 되는 것마냥" 남성들에게만 도시 산보를 허락했던 사회에서 숨었던 플라뇌즈들을 드러낸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아녜스 바르다, 진 리스, 소피 칼... 그는 이 여성 예술가들이 앞서 걸었던 바로 그 도시들을 걸으며 그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사유를 넓혀나간다.
억압의 기능만 남아있는 금기를 깨고 기존의 통념을 전복하는 글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런 글에서도 표현 방식은 여럿인데, 이 책의 매력은 과도하게 힘 들어가지 않은 태도에서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여자라면 고어텍스를 입고 쭈그려 앉지 않아도 전복적일 수 있다. 그냥 문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전복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플라네리(산보)도 그저 플라네리로만 받아들여지는 세계가 정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