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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속, 외롭고 고단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대체로 격렬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한 표정으로 도시를 떠돌며 자신의 고통을 과시하지 않는다. 다만 견딜 뿐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지는 현실적 풍경들을 지나다 보면, 소설이 묘사하는 감정들이 밀물처럼 목끝까지 차오른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의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가 그의 소설과 공명한 바 있다. 1995년 발표한 작가의 이 첫 번째 소설집에 그의 소설이 묘사하는 외로움, 애틋함, 떠돎의 기원이 있다.
누군가의 노래에선 '아름다운 얘기가 있'었던 그곳, 여수. 서효인의 시에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였던 그곳이 자흔과 정선에겐 떠나도 떠날 수 없는 곳, 끝내 찾아내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한강의 소설 속 여수는 '녹슨 철선들이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는' 곳이다. "자흔의 무관심하고 지쳐 보이는 미소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세월의 상흔"이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서 손쉽게 발견되는 표정"임을 알아챌 수 있는 독자라면, 한강의 이 애처로운 슬픔을 끝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