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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 질환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심해진다. 굳이 통계를 따지지 않아도 체감되는 사회적 변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그 사실은 예전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분명 질환 당사자들에겐 다행인 측면이 있다. 더 이상 숨기거나 모른 척 하느라 질환의 악화를 손놓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의료인류학 및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간과했던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병의 창궐과 약물 처방의 증가가 가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책이 지적하는 지점은 정신 질환 치료에 대한 현재의 약물 치료 패러다임이 오로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며 고통을 탈정치화한다는 데에 있다. 사람의 정신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버틸 수 없게 된 정신만을 질환이라 개념화하고 약물로 치료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산성 높은' 인간이 아닌 상태에 정신 질환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정신 질환의 가짓수, 정신 질환자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구조적 질문을 던지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떤 불합리한 질서를 옹호하는가?
책은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정신병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꼬집으며, 현재의 정신 건강 산업이 이를 얼마나 교묘히 가리고 있는지 분석한다. 약물에 대한 장기적 의존이 실질적으로 치료적 효과가 없다는 연구, 사내 정신 치료 워크숍이 현실의 과로 문제를 무시하는 기만적 사례 등을 논거로 들며 저자는 이 책의 주장을 단단히 다져 나간다. 우리 정신에 필요한 것은 약물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다. 손에 들린 파란약을 가져가고 빨간약을 내미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