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의 무수한 나를 해방시킨다"
27세 유치원 교사인 오영아는 잘 웃고 잘 참는다. 친구 은주가 재난 피해를 받은 세계 각지의 아동의 비참한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전달한 기부 링크를 보면 청바지를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기부를 한다. 은주가 하는 말은 항상 옳다. 정치인의 비리, 기업의 로비, 프리랜서의 고발, 연예인의 잘못된 역사의식 등 비난받아 마땅한 악행이 세계 도처에 가득하고 은주의 가치관에 복종하느라 오영아는 웃음을 잃었다. 자신을 때리는 폭력적인 원생 은우며, 나에게 잘해주는 좋은 사람이지만 재미는 없는 남자친구 수원 등에 시달리면서 참고 절제하느라 무표정해진 오영아는 예전의 밝은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서 변화 시술'을 소개받는다. 뇌의 기전을 자극해 도파민을 휘감은 영아는 이제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처럼 질주하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K-스토리 공모전'등 다수의 공모전에 입상, <라스트 젤리 샷>으로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한 작가 청예가 심사위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소설을,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SNS에 '박제'되는 게 무서워 하고 싶은 말을 참아본 적이 있다면,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닳고 닳아 웃음을 잃은 적이 있다면 당신도 꼭 이만큼의 자유를 갈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시작하면 끝까지 내달리는 뾰족뾰족한 소설. 오렌지와 빵칼을 양 손에 쥐고 딱 그만큼의 해방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 소설 MD 김효선 (202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