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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2015)으로 시간을 거슬러 사랑받고 있는 최진영의 신작 소설집. 202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홈 스위트 홈> 등 2020년대에 발표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실었다. 전쟁을 세 번 겪은 할머니를 둔 '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미래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미래와 격돌할 것을 다짐한다. 오페라의 서곡처럼 맨 앞에 놓인 소설 <쓰게 될 것>은 이 소설들이 향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최진영이 독자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에서 디스토피아를 마주한 인물들은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쥐고 질주했다. 작열하는 태양, 전쟁, 아픈 몸 같은 현재적 질문을 품은 최진영의 인물들은 체념하는 대신 뭐라도 한다. 어린이, 가부장제 하의 여성, 아픈 몸을 사는 사람으로 몸을 바꾸며 이들은 '위악보다는 위선이 낫다고. 망하고 싶으면 너 혼자 망하라고'(153쪽) 한 마디를 더 하고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썸머의 마술과학>의 이여름 어린이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썸머로 정했다고, 그러니 썸머로 불러달라고 세계에 반복해 말한다. '내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만이 나를 썸머라고 부른다.' (141쪽)는 썸머의 말은 꼭 이름에 대한 것만으로 들리진 않았다. 2040년대를 살아갈 썸머의 바람은 집 근처 강변을 산책하는 어른이 되어 소소하고 평온한 하루를 누리는 것. 썸머의 말에 귀를 열고 썸머가 스스로를 썸머라고 정했으면 썸머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디쓴 삶이라도 이야기로 써서 고통 너머로 나아가고 싶다'는 작가의 말대로 최진영의 소설은 사랑하는 것이 존재할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