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기후 변화와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미국. 이방인의 이주를 막기 위해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선 차별과 혐오가 들끓고 있다. 장벽 안의 사람들은 그저 모든 것에 안주한 채 각자의 생존을 위해 분투할 뿐이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초공감증후군’을 앓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 로런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 세상은 크게 병들어 있다. 로런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장벽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한다.
충격적인 점은 이 소설이 1993년에 발표되었고, 소설의 시점이 2024년이라는 것이다. 30년 전에 상상된 디스토피아가 현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책이 속한 ‘우화’ 시리즈의 두번째 책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에는 극우주의 성향의 대통령이 등장하며 소수자 탄압이 더욱 심해진 2030년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근미래'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통의 시대를 감지했던 작가는 로런이 앓고 있는 초공감증후군을 해답으로 건네는 걸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감각, '공감'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준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꽤 많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거야. 세상은 늘 변하고 있어. 지금은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쉬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크게 성큼 뛰어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뿐이야.(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