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라는 대화가 당연하게 오가는 세계. 도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기에 불행도 고통도 상처도 없는 '매끄러운 세계'다. 그 속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던 여고생 하즈키. 그는 전학 온 친구 마코토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장애'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하즈키는 처음으로 인식한다. 이 평화롭고 매끄러운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세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세랑 작가가 "어지러울 정도로 좋았다. 다시 읽고 싶고 더 읽고 싶다."는 말과 함께, 천선란 작가가 "정신없이 낯선 세계를 여행하다 돌아온 기분"이라 추천하며 함께 읽은 작품. 2019년 일본 베스트 SF 1위에 선정된 한나 렌의 소설집을 만난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을 태운 신칸센 속의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생긴 일을 담은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미소 냉전이 인공지능 대결이었다는 상상을 담은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뇌과학의 발전으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을 비롯한 여섯 편의 단편들이 강렬한 빛을 발한다. 과감한 상상력의 방대한 스펙트럼 속에 어딘가 뭉클하고 서정적인 색채가 덧입혀져 한나 렌만의 독특한 세계가 탄생했다.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그리는 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