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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기의 주 양육자는 TV와 책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은 꼭두새벽에 일하러 나가 해가 지면 돌아왔다. 밥을 차리고 동생들을 돌보는 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나의 일이 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 혼자 쑥쑥 클 순 없었고 나를 돌본 건 근처에 사는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도 바쁘시니 나 혼자 노는 게 제일 편했고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어른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혹은 나를 돌봐줄 존재가. 그럴 땐 책에서 만난 뽀르뚜까 아저씨를 상상한다던가 제제처럼 환상의 친구인 두꺼비가 나에게도 보인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여기 집이 망해서 작은 집으로 이사한 어린이가 있다. 집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개장과 함께 집을 지키는 이 어린이는 자기를 돌봐줄 어른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특히 태권도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연장자, 어른이 꼭 필요하다. 마음이 부글부글 뜨거워지면서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괜찮으니까 지금 당장" 나와야 한다 외친다. 이때 이 아이의 외침을 듣고 자개장에서 환상처럼 나타난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태권도 학원에 데려가 주고 맛있는 밥도 챙겨준다. 비록 자고 일어나면 할머니는 자개장 나라로 사라지겠지만 마음이 활활 불타오를 때면 할머니가 또 나타날 지도 모른다. 어린이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자개장은 확실히 오랜 사랑과 보살핌이 아니면 보존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요즘 시대엔 찾아보기 어려울 터이다. 아름다운 자개장을 어린이를 지켜주는 어른으로 묘사한 다감함과 자개장의 아름다움을 망설임 없이 종이 위에 표현한 안효림 작가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