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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에 압도당한 ‘나’는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계속해서 차를 몰다가 바큇자국이 점점 깊이 파이는 숲길로 접어들어서야 어느 순간 차가 길바닥에 처박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를 돌릴 수도, 후진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다. 도움을 청할만한 곳도 없고, 하늘에선 눈이 내린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숲속으로 걸어간다. 피로와 추위, 배고픔이 엄습하는 가운데 ‘나’의 눈앞에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것은 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것이 사람일 리가 없다. 밝은 빛을 내뿜는 순백색의 형체가 나’에게 다가온다. 과연 지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최신작. 작가 데뷔 40주년인 2023년 발표한 소설로, 8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본문 속에서 의식 그 자체처럼 흘러가는 물음표 없는 질문들로 작가가 오래도록 천착해 온 삶과 죽음의 문제, 그 문턱에 놓인 한 인간의 내면과 기이한 체험을 묘사한다. 그의 문학세계의 결정적인 특징이 모두 망라된, 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수작. 많은 매체의 평가처럼 욘 포세의 작품에 다가가기 위한 입문서가 될 책이다. 스웨덴 아카데미 노벨재단의 동의를 구해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을 함께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