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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것도 스스로? 일본에서는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런 현상을 일본에서는 ‘증발’이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이들. 이 가운데 3만 명 남짓한 이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니, 나머지 7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어딘가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겠다.
그들이 증발한 이유는 여럿이다. 취업 실패, 시험 낙방, 이혼이나 퇴사 등 사회에서 관문과 책임으로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느꼈을 때, 주변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압력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가능할까, 가족은 그들을 찾을 수 없었을까 찾지 않았을까, 그들은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끊이지 않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 년에 걸쳐 세상 아닌 세상으로 뛰어들어 담아낸 그들의 목소리에서,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가 다다른 곳을 확인한다. 그곳은 사회가 압박하는 책임만 가득할 뿐 사회가 맡아야 할 책임은 고려되지 않는, 사회가 증발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