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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그 그림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온 뒤, '나'를 둘러싸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내가 사라진 뒤 혼자 남은 남자가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신비한 세계와 연결되는 설정은 무척 하루키답다. 아마 이러한 내용과 가장 닮아 있는 작품은 <태엽 감는 새>일 것이다. <태엽 감는 새>는 야망에 가득한 작품이었고, 그 야망에 걸맞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들이 작품을 장악하고 있었다. 해설집이 따로 출간될 정도였다. 그 야심이 하루키 본인에게 얼마나 흡족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해변의 카프카> 등을 내던 시절 이후 그가 내놓은 소설들이 상대적으로 힘을 뺀 것처럼 보였던 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21세기가 지나가고 있었고, 드디어 <기사단장 죽이기>가 등장했다.
여러 면에서 <태엽 감는 새>를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그러나 그보다 더 읽기 편하고 느긋하다. 전체적으로 느긋한 이 템포는 그가 21세기에 발표한 소설들과 닮아 있다. 하루키는 아직도 자신이 써 온 작품들의 장점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 되셨으면 좋겠다. 이번 결과물은 재미있었다. 그간의 하루키가 요리조리 조립되었다.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사단장 죽이기>는 그가 21세기에 발표한 작품 중에 가장 재미있는 소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