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밤의 밀도와 향기만큼은"
<눈부신 안부>, <여름의 빌라> 백수린 네번째 소설집. 백수린의 소설 속 여성들은 빛에 홀려 빛을 따라 걷는다. 서술자는 단정하고 고요한 문장으로 내면의 소용돌이를 포착한다. 이 포착을 위해 백수린의 소설이 사용하는 방식은 최대한 정확하게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수록작 <아주 환한 날들>에서 손녀가 맡기고 간 '앵무새를 목련 송이처럼, 조금만 힘을 주면 망가지는 봄날의 목련 송이처럼' (32쪽) 손바닥에 담는 순간 자기 규칙 대로만 살아온 노년 여성의 마음엔 목련 송이처럼 무언가가 내려앉을 것이고, <빛이 다가올 때>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이모와 산책을 하며 언니가 '사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고, 온통 부드러운 흰빛이라고. 눈 위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은 아주 연한 노란색이라고'(69쪽) 묘사하는 순간 두 사람의 걸음에도 부드러운 흰빛이 쏟아졌을 것이다. 백수린의 소설을 읽으면 이렇듯 화사한 묘사가 읽는 사람의 손 끝에도 빛처럼 내려앉는 것 같다.
봄밤을 서성이며 백수린의 소설을 읽었다. 책을 받아든 후 일주일 동안 자기 전에 한두 편씩 수록작을 읽었는데,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한 후엔 잠시 멈추어둔 채로 소설의 장면들을 상상했다. 개가 튀어오르는 장면,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떠올리던 어떤 밤엔 때론 뒤늦은 눈이 왔고, 때론 밤산책에 걸맞게 온도가 적절했다. 다음 봄밤에도 이 장면들과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설이 마음 속에서 계속되었다.
눈이 쌓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집을 봄이라는 제목으로 감싼 것을 두고 백수린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266쪽)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믿음이 내게도 번져와 백수린 소설의 독자인 나 역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또다시. 이럴 때일수록 이 봄엔 희망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215쪽)는 소설의 믿음이 독자에게 번지길 고대하며 이 책을 독자의 봄밤 곁에 놓아본다.- 편집 주간회의
"<내면 소통> 김주환 교수가 제시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방법"
<내면 소통>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의 <그릿> 12년 만에 전면 개정되어 새롭게 출간되었다. 성취력의 핵심인 ‘그릿(GRIT)’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으며, 이를 통해 목표를 이루는 힘을 설명한다. 그릿은 자기조절력, 대인관계력, 자기동기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이가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다. 저자는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동기를 갖고 즐겁게 공부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양육자들이 아이가 공부를 힘들어하기보다 스스로 즐기며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환경과 주변의 기대가 오히려 아이의 그릿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아이가 행복해야 공부도 잘할 수 있으며, 강요보다는 내면의 동기를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양육자가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뇌과학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비단 공부뿐만 아니라, 아이가 인생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가이드다.- 편집 주간회의
"히가시노 게이고 ‘탐정 갈릴레오’ 아홉 번째 이야기"
도쿄 인근의 작은 도시 기쿠노. 그곳 상점가의 식당 나미키야는 단골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식당이다. 나미키야의 주인 나미키 유타로와 마치코 부부의 딸 사오리는 친절하고 명랑한 소녀로 자라 손님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사오리는 고장에서 꽤 이름난 자산가이자 프로듀서인 니쿠라의 눈에 띄어 가수 데뷔를 준비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데뷔를 눈앞에 두었을 때 사오리는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조용했던 마을이 증오와 울분에 휩싸인 그때 경찰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주시하고 있는 하스누마가 기쿠노에 나타나고, 사오리를 기억하고 사랑하던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시리즈 누적 1,500만 부가 판매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 시리즈 ‘탐정 갈릴레오’ 9편. 전편 <금단의 마술>에서 사건 종료 후 돌연 미국으로 떠난 유가와 교수는 정교수 되어 돌아왔고, 그사이 구사나기 역시 경찰 조직 내에서 승진했다. 이번 작품의 주요 플롯은 미스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불멸의 명작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다분히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 속의 미스터리가 옛 걸작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미스터리가 명명백백 밝혀진 것 같은 순간에도, 탐정 갈릴레오는 마지막까지 의혹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 주간회의
"이경규, 그가 삶을 사랑하는 방법"
양심냉장고, 몰래카메라, 마이 리틀 텔레비전, 남자의 자격, 도시 어부... 코미디언 이경규 하면 누구나 떠올릴만한, 대한민국의 대표 프로그램들이다. 그의 방송은 1990년대부터 2025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말만 현역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현역 방송인인 셈이다. '예능 대부' 이경규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삶을 꿈꾸는가? 대한민국의 대표 코미디언, 평생 현역 이경규의 삶이 이 책 안에 빼곡히 들어 있다.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겪은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익살스러운 문체 속에서도 깊은 성찰이 녹아 있으며, 특히 유머를 통해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마치 한 편의 토크쇼를 보듯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문득문득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 등장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도 어느새 진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이 책처럼, 그의 삶이 완벽히 녹아 있어 독특한 개성이 있는 그의 코미디도 더 많은 이들에게 더 각별히 사랑받길 바라본다.- 편집 주간회의
"국내 최초의 정식 완역판"
책은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앨 앨버레즈는 그의 동료였다. 실비아 플라스는 '비극적으로 자살한 예술가'의 대표격으로 소환되며 삶을 마감한 순간의 자극적인 이미지로 끝없이 회자되지만 앨버레즈는 그의 죽음에서 단편적 이미지 너머의 이야기들을 발굴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시에 죽음이 어떻게 방문했는지, 그의 문학적 천재성과 자살이 어떻게 엮여 있었는지 과감한 추측을 하며 책은 자살 연구의 막을 올린다.
앨버레즈는 자살을 숭상하거나 매도하지 않고 분석한다. 자살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그는 죽음과 자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훑는다. 그리고 예술가들과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 들려준다. 저자가 쓴 것처럼 "죽음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우리를 솔깃하게 한다." 역사 속 예술가들의 자기 파괴에 관한 내용은 금기된 이야기 특유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출간 이후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괴리감 없이 읽히는 책이다.- 편집 주간회의
"이어령 최후의 기획"
이어령 선생이 떠난 지 3년, 그의 마지막 기획이 세상에 나왔다. 그가 남긴 수백 권의 책들 중 '이어령 말의 정수'라 할 만한 글을 추려 한 권으로 엮었다. 주제에 따라 짧게 짧게 구성된 글들엔 이어령 특유의 통찰과 지혜가 넘치게 담겼다. 이어령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겐 그의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기회이고, 이어령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의 지성에 처음 닿을 수 있는 기회다. 지성과 지혜는 시대와 상대를 초월한다. 그의 글은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 필사가 유행인 요즘, 이 책을 또박또박 따라 쓰며 어지러운 세상, 흔들리는 정신의 지지대를 세워봐도 좋겠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선물하기에 손색없는 책이다.- 편집 주간회의
"환율, 투자의 기본이 된다"
투자의 성공은 경제 흐름을 정확히 읽는 데서 시작되며, 그 중심에는 '환율'이 있다. 세계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늘날,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국가 간 경제력의 바로미터이자 투자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특히 미국 금리 정책,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무역 분쟁, 팬데믹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지금, 환율에 대한 이해는 투자자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더욱이 국내 경제만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의 미래는 자산의 분산에서 통화의 분산으로 바뀌고 있다. 달러의 강세, 엔화의 변동, 금값의 상승이 우리의 투자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 '환율'을 아는 것은 우리 자산을 지키고 키우는 핵심 열쇠이다.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투자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이번 책에서 모든 이들이 투자에 앞서 놓쳐선 안 될 금융 정보의 진수를 담아내는 한편, '달러', '엔', '금' 이 세 가지를 투자 포트 폴리오로 편입시켜 자산을 지키고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불확실성이라는 안개가 짙게 깔린 투자의 세계에서, 이 책은 당신의 자산을 지켜줄 가장 확실한 우산이 될 것이다. 당신의 재테크를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 이 책을 놓치질 않길 바란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편집 주간회의
"11장의 평면도에 숨겨진 섬뜩한 비밀"
기묘한 평면도 한 장을 바탕으로 그 집이 지어진 이유와 거기서 일어난 무서운 일에 대한 충격적인 부동산 괴담 <이상한 집>의 출간 이후, 저자 우케쓰는 일본 전역에서 ‘집’과 관련한 수많은 제보를 받는다.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복도, 움직이는 벽, 갑자기 사라져 버린 방…. 이상한 집들이 상상 이상으로 전국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이상한 집들에 대한 제보를 쫓아 전국을 누빈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어딘가 수상한 위화감을 느낀다. 11개의 평면도, 그리고 그에 얽힌 11개의 이야기.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것들 사이의 희미한 연결점을 더듬어 도착한 끝에는, 상상 이상으로 섬뜩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평범한 평면도만으로 엄청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부동산 미스터리’라는 신기원을 연 <이상한 집>, 그 두 번째 이야기. 전작보다 두 배 이상 많아진 분량, 더 다양한 평면도, 교묘하게 감춰진 비밀과 섬뜩한 수수께끼까지, 작가의 성장을 확실하게 보여 준 이 작품은 2025년 일본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집’, 그 안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비밀을 ‘평면도’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내 뛰어난 가독성과 생생한 공포를 이끌어내는 놀라운 책. 저자는 책 서두에서 “꼭 추리하면서 읽어 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11장의 평면도는 독자 모두에게 숨김없이 공개되어 있으니, 이상한 집에 얽힌 미스터리에 정면으로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편집 주간회의
"이상문학상, 혁명적 발견 예소연"
1회 수상자 김승옥을 시작으로 박완서, 양귀자, 한강, 김애란을 소개한 이상문학상이 2025년 새로운 출발과 함께 대상 수상자로 예소연을 호명한다. 2021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제13회 문지문학상, 제5회 황금드래곤문학상,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24년 출간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한 기세가 좋은 젊은 소설가다. 은희경 이래 '등단 후 최단기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이고, 김애란 이후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이다.
'민주85'였던 '운동권' 아버지가 바깥의 우정에 골몰하는 동안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이었다. '환경 운동이니 페미 운동이니 그런 배지들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요즘 여자들'(31쪽)인 나는 그런 아빠에게 모종의 미움을 품고 있지만 그의 장례식에서 혁명적인 개판을 벌이면서 훼방놓고 지지할 방법을 찾아가게 된다. 날카롭게 쏘다가도 끝내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는 태도로 못내 웃기는 문장들이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타인의 모난 마음, 구린 마음을 톺아보려는'(42쪽, 문학적 자서전) 인간적인 시도를 지속해나간다. 몰래 아빠 유튜브 계정의 알고리즘을 건드려본 적이 있는 자식이라면, 너무 미운 것을 덜 미워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찌르고 웃기는 이 소설의 혁명적 태도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소연의 자선대표작, 문학적 자서전과 김기태, 문지혁, 서장원, 정기현, 최민우의 우수작이 함께 실렸다. 심사위원과 작가가 마주앉아 주고받은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실어 다시 이상으로, 다시 한국소설로 다가올 독자에게 손을 건넨다.- 편집 주간회의
"명화 속에 핀 108가지 꽃 이야기"
예술가 48인의 꽃에 대한 생생한 탄성이 담긴 꽃 화보집이다. 강렬한 화풍의 마티스가 그린 온화한 꽃 그림부터 몬드리안의 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보이는 화병, 인상파 서양화가에 영향을 끼친 하세가와 게이카의 거미와 닮은 국화, 가위질로 3차원의 꽃을 표현한 종이 오림 기법의 그림까지. 책은 꽃의 조형적 구조가 주는 율동감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캔버스에 실은 화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와 108점의 그림을 친절한 해설과 함께 담았다.
시대를 불문하고 '꽃'은 화가들의 새로운 공정 기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멈춰준 가장 섬세하고 완벽한 피사체임을 드러낸다. 겨울 햇빛을 좇아 높게 솟은 꽃부터 까만 밤 달빛 사이로 하얗게 빛을 내는 꽃까지 어느 한 시대, 순간에 꽃을 바라보았던 작가들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작가마다 고유의 방식으로 그려진 꽃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색채를 뽐내며 마지막에는 매혹적인 향기를 코끝에 남기는 듯하다. 이 계절 당신의 마음을 밝혀줄 생명의 기쁨이 담긴 책을 만나보자.- 편집 주간회의
"윤성희 소설처럼, 느리게 봄"
<날마다 만우절>(2021년 출간,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후 4년 만에 출간된 윤성희 소설집. 이른 봄에 내리는 눈처럼 삶이란 갑작스럽다. 가게는 망하고, 사람은 아프고, 사고로 죽고, 부모는 이혼하고 그러면서 삶이 터덜터덜 굴러가는데 기념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생일과 기일을 마주친다. 진짜 생일일 때도 있고, 가짜 생일일 때도 있고, 친구 생일일 때도, 모르는 사람의 생일일 때도 있다. 기념일을 맞아 작은 파티를 하는 순간 시간이 느려지고, 인물들은 그렇게 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노부부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어보니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재생 속도는 0.25배야. (249쪽, <보통의 속도>)
유튜브 주식 강의를 1.5배로 설정하고 보는 세상의 속도에서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튕겨져 나왔다. 이들이 화가 날 때 하는 일은 평행봉 선수가 되는 상상을 하기,(<타임캡슐>) 죽고 싶어질까 봐 하는 일은 짝짝이 양말 신고 등교하기, (<자장가>) 외로울 때 하는 일은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바람 불어보기(<보통의 속도>)이다. 긴 문단이 유려하게 흐르며 이렇듯 실없는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이 싱거운 리듬이 자꾸 떠오르고 이윽고 슬퍼지는 신비로움이 윤성희 소설의 맛이다. 평행봉 선수처럼 눈을 감고 이 소설의 장면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피식 웃게 되고, 그렇게 삶이 조금 느리게 흐른다. 좋은 소설을 만난 소설 독자에겐 오늘이 생일이다.- 편집 주간회의
"드라마 <안나> 원작자, 정한아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드라마 <안나> 원작소설)의 정한아가 8년 만의 장편 소설로 3월 독자를 만난다.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된 파국이 연쇄적으로 번져나갔던 전작처럼 신작의 주인공 '이마치'도 남을 속이는 인물이다. 전작의 인물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는 속임으로써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것. 연기자로 크게 성공한, 개인적인 삶에 모두 실패한 60대 여성 배우 이마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대안적인' 가상현실 치료를 받기로 한다. 과거의 어느 시점의 스스로를 만나, 자기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의 무대에 선 이마치는 스스로를 찾기 위해 마지막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연기였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 연극은 십대 시절 그녀가 경험한 유일한 환희였다. (28쪽)
동두천 뒷골목의 클럽, 어둠과 자유와 환락이 있던 극장, 아파트 60층을 향해 무한히 뻗은 계단, 디자인 하우스 같은 노란 진료실, 야구공이며 레고 같은 실종된 아이의 물건이 보존된 방 등 무대 장치 같은 공간을 오가며 이마치는 삶의 곡절을 연기한다. 존재감이 대단한 배우는 <모비 딕>의 바다를, <햄릿>의 궁정을 스스로의 연기만으로 눈앞에 그려낼 수 있다. 이야기를 장악한 스토리텔러 정한아는 독자를 '이마치'라는 배우의 삶을 목격하는 관객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아들을 잃은 비통한 여배우,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 여성, 언니의 죽음을 목격한 어린 아이, 모친에게 학대당한 아이를 오가는 강렬한 드라마의 끝에서 독자-관객은 이 불운한 인물의 기억에 자신의 삶을 포개는 경험을 하고, 마침내 대단한 극 한편을 보고 나온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개운한 얼굴로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편집 주간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