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는 1632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내전이 끝나기 전인 1647년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들어갔고, 1652년에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개인적으로 로크는 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새로운 학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1666년, 후일 대법관이 되는 애슐리 경(섀프츠베리 백작)을 만났고, 그를 도와 오랫동안 정치적 활동을 했다. 1675년 말부터 3년 6개월간 프랑스에서 잠시 철학적 삶을 향유했지만 1679년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배척법 위기에 휘말렸고, 결국 1683년 여름 급진 휘그파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지자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명예 혁명 후 귀국했지만, 한동안 공직 제안을 거절하고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하여 출간하는 일에 매진했다. 1695년부터 5년 동안 식민지 경영과 관련한 공직을 맡아 일했으며, 공직을 떠난 후 바울 서신에 대한 주석 작업을 하면서 말년을 보내다가 1704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로크는 17세기 유럽의 철학자이다. 유럽에서 17세기는 한 세기 전에 일어난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인해 종교적 분열과 정치적 대립, 지적 회의가 극심하던 시기였다. 정치적・종교적・학문적 전통의 힘이 쇠약해지고 확실성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로크는 정치적 무정부와 종교적 광신, 지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의 정치적・종교적・철학적 삶을 다시금 합리적 토대 위에 세우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로크는 먼저 인간의 지성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영국 경험론의 아버지로서 로크는 선험적 지식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경험적으로 형성되는 지식의 확실성을 따질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 능력이 최소한 잠재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한 로크는 이 능력을 사용해 도덕적 완성과 지적 확실성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의무의 실천 여부에 따라 인간은 상이한 가치를 가지게 되는데, 그래서 로크는 가정(가족 사회)에서의 교육을 중시했고, 국가(정치 사회)의 계약에 동의 능력을 갖춘 합리적 개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봤으며, 영혼의 구원은 어느 교회(종교 사회)에 속해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고 자가 가진 믿음의 확실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로크의 인식론, 교육론, 정치론, 관용론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로크와 같은 17세기 유럽의 철학자를 이해하고자 할 때, 철학 그 자체의 어려움에 더해 추가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대개 시간적?공간적 차이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로크를 조금이라도 더 잘, 그리고 더 쉽게 이해하려면 먼저 3백 년이라는 시간적 차이, 서유럽과 동아시아라는 공간적 차이 그리고 지극히 세속적인 오늘날과 여전히 종교적인 당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그 간격을 좁힐 필요가 있다. 로크 자신이 쓴 책을 통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우므로, 일단 로크와 그의 시대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는 것이 좋겠다. 우도 틸이 쓴 『로크』는 한국어로 번역된 로크에 관한 가장 자세한 전기이자 그의 사상에 대한 소개서이다. 상세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현대 한국 독자의 사전 이해 정도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단점이다. 그래도 로크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봐야 할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적?종교적 상황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초보자에게는 박지향이 쓴 『클래식 영국사』가 첫 번째 책으로서 더 적합할 것이다. 이 책 2부에 서술되어 있는 튜더 시대와 스튜어트 시대 부분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그다음으로 문지영이 쓴 『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를 읽으면, 역사적 배경에 더해 사상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홉스와 로크의 정치 이론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두 사람의 정치 이론의 차이를 비교적 쉬운 언어로 풀어 써놓았다. 홉스와 로크는 모두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였고, 그런 만큼 비슷한 문제를 두고서 지적으로 씨름했지만, 매우 상이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먼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시대적 배경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면, 이제 철학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만으로는 로크의 인식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식론 자체가 비전공자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어서 초보자가 접근하기에 무척 까다롭다. 강영안이 쓴 『강교수의 철학 이야기』 가운데 로크에 관한 부분은 로크의 인식론적 작업을 그 배경이 되는 당시의 종교적 문제와 연관 지어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종교 개혁이 야기한 다원적 상황에서 로크가 어떻게 진리(지식)의 단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의 다양성을 포용하려 했는지를 인식론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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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충분하지는 않지만 본격적인 공부를 위한 예비 지식이 어느 정도 쌓였으므로, 로크가 쓴 책들을 직접 읽어 보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로크의 저작은 아무래도 『인간지성론』과 『통치론』일 것이다. 로크의 관심은 당대의 정치적?종교적 혼란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17세기의 다른 많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로크는 혼란의 원인을 인식론적 위기, 즉 지식의 위기에서 찾았다. 그러나 로크는 지식의 위기를 다시 종교적?정치적 전통에 의지하여 봉합하려고 하지 않았고, 주권적 결단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로크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으며, 또 어떻게 알 수 있게 되는지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당대의 인식론적 위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려 했다. 그래서 애슐리 경을 만나 정치적 활동을 하면서도 인식론적 연구를 병행했고, 프랑스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교제하면서 내용을 가다듬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인간지성론』이다. 이 책을 통해 로크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지식과 의견이 구분되어야 하고, 둘째, 확실한 지식의 영역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실천적 함의가 도출된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사실상 진리를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기껏해야 개연성이 높은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추구하고 의견과 믿음의 개연성을 높이는 일은 각자의 인식적 의무이겠지만, 사회적 삶은 여전히 불확실한 의견들에 기초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사회적 삶은 합의에 기초해야 하며, 이때 각자의 불확실한 의견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회에 대한 로크의 관심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로크가 생각하기에 사회는 개인들이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의하에 결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그 목적과 합의를 벗어나는 어떤 것을 구성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개인은 사회를 통해 애초의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 사회를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 사회이건 종교 사회이건 간에 마찬가지이다. 로크가 『통치론』의 1권에서 필머의 가부장지배론을 비판하는 이유는, 첫째, 왕이 가부장으로서 통치권을 가진다고 하는 주장이 확실한 진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성서적 증거도 불충분한 매우 개연성이 낮은 의견에 불과하고, 둘째, 가족 사회조차도 일시적으로만 자연적 필요에 의존할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동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통치론』의 2권이 가족 사회와는 다른 정치 사회의 목적과 구성 원리를 밝힌 것이라면, 『관용에 관한 편지』는 정치 사회와는 다른 종교 사회의 목적과 구성 원리를 밝힌 것이다. 비록 『통치론』의 1권이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2권 앞부분에 요약되어 있는 내용을 로크가 『인간지성론』, 특히 4권에서 밝힌 인식론적 주장과 연결하여 읽고, 또 『통치론』 2권의 곳곳에서 수행하고 있는 가족 사회와 정치 사회의 구분을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의 종교 사회와 정치 사회의 구분과 비교하여 읽으면, 로크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넘어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로크는 지식과 의견을 구분하고 의견의 영역에서 다만 동의에 의존해 결성되는 상이한 목적을 가진 사회들을 구분함으로써, 내전 이래 다시금 해체 위기에 처한 영국을, 정치적?종교적 통일성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의 구분에 기초해서 통합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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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인간의 지성적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지성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로크의 이런 건전한 회의주의는 한편으로는 『통치론』에서 제안된 것과 같은 제한 정부 이념으로, 그리고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옹호된 것과 같은 관용적 국가 이념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미성년 상태에 있는 것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지배의 정당화 논리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맥퍼슨의 『홉스와 로크의 사회 철학』은 17세기의 정치 이론들을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틀로써 분석하고 있는데, 이 책의 5장에서 로크의 사상이 다루어진다. 저자의 비판적 논점은 이것이다. 로크의 이론에서 처음에는 소유의 권리가 개인들이 평등하게 보유하는 자연적 권리로서 정당화되지만, 그렇게 정당화된 소유의 권리가 개인의 지성적 능력의 차이로 인해 점차 재산의 불평등을 낳게 되고, 급기야는 그런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시민 사회를 형성하여 계급적 차이와 그에 근거한 지배를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시민 사회가 사실상의 유산자 동맹이라는 비판이다. 강정인의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재산권과 관련한 로크의 주장을 서구 중심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의 6장 「초기 자유주의 사상에 나타난 서구 중심주의 ? 로크의 재산권 이론을 중심으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은 로크의 이론이 서구 중심적 편견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며 비판한다. 모두 현대적 시각에서 로크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로크의 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멜리사 버틀러는 『페미니즘 정치사상사』의 4장 「초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근원 ? 존 로크의 가부장주의 비판」에서 로크가 가부장지배론을 비판하며 자녀에 대한 부부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했고, 여성의 잠재적 합리성을 인정했으며, 또한 그에 근거해 여성의 재산권을 옹호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에 관한 로크의 일견 모순적인 입장은 인간이 잠재적으로는 평등하게 합리적이지만 현재적으로는 불평등하게 합리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로크는 이런 불평등에서 일종의 의무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즉 부모와 자식 사이의 합리성의 일시적 불평등 상태가 자식에 대한 일시적 지배, 즉 교육의 의무를 부모에게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 『교육론』이다. 인간의 완성된 상태를 가정하고서 그러한 상태로 어린아이를 길러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정리한 글이다. 이런 교육 기회의 차이가 현재적 합리성의 차이를 만들고, 그 현재적 합리성의 차이가 다시 시민적 권리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아직 로크가 고민하지 못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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