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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정우영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0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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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순한 먼지들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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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박형권의 시선은 평범하거나 혹은 그보다 못한 일상 쪽에서 열린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 속 삶의 현재는 가난하고 버거우며 때로는 위태롭다. 그런데 희한하기도 하지. 그 시의 결은 얄팍하지도, 구차스럽지도 않다. 분명히 별 볼 일 없는 나날인데 결코 하찮치 않은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기조차 하다. 쓸쓸함마저도 그의 시에서는 올연하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생활 속에서 그의 시는 어찌 이리 당당할까. ‘과’와 함께. 이의 발견 덕분 아닐까. 우리가 버렸거나 잊고 있었던 ‘과’를, 그는 찾아낸 것이다. 박형권은 “함께가 되고 싶은 말‘과’/매끄러운 지상의 공기를 마저 마시고/천둥 번개가 번뜩이는 이 소란한 빗속에서”(「‘과’와 함께) ‘과’의 어깨에 그의 손을 얹는다. 우리 삶 속 가난과 허기와 절망 옆에 이 ‘과’를 앉힘으로써 그는 그것들을 껴안고 숱한 삶의 협곡들을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박형권의 시는 가난하되 가난하지 않고 허기지되 허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절망조차 절망의 나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지하방과 옥탑방, 바다와 뻘밭은 삶의 진창이 아니라, 삶을 받쳐 주는 어깨가 되는 것이다. 내가 너를 분류하고 너는 나를 분류하는 세상에서, 내가 너의 어깨가 되고 네가 나의 등이 되는 이 ‘과’와의 공생은 혈연만큼이나 끈끈하다. 살림 공동체처럼 비쳐지는 것이다. 비록 그곳에서는 “여전히 하수도 냄새도 나고 찢어지게 우는 아이도 있고/빛바랜 옷들도 옥상에서 펄럭”이며 “시끄러운 봉제 공장”(「비 내리는 이사」)이 돌아가고 있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저와 같이 더불어 함께하는 우애의 공동체라면. 아마도 박형권은 넌지시 이렇게 말할 듯싶다. 그러므로 그대여, 위축될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나댈 필요도 없다고. 이 든든하고 탄탄한 삶의 어루만짐이라니.
2.
그는 참 지극하다. 눈과 귀, 손과 발에 닿는 대상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온 정성 기울여 모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물상인들 기꺼워하지 않으리. 연꽃과 그의 관계를 한번 보라. 둘이는 얼마나 설레는지. “날이 흐리거나 맑거나/당신이 오신다면/피어 있”고 “날이 맑거나 흐리거나/그대가 피어 있는 한/나는”(「연서」) 간다. 대단한 교감 아닌가. 어디 이뿐일까. 그는 연을 통해, “볼품없이/깨지고 상처 난 연밥들이/죄다 새들의 밥”(「밥」)이라는 만물 순환의 이치를 깨닫는가 하면, “저 꽃들 중에/고요의 연습 없이 핀 꽃”(「고요 연습」)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자각에까지 이른다. 가히 연과 내가 하나 된 ‘연아일여(蓮我一如)’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안준철은 연이 된 최초의 시인인 셈인데, 과연 그가 연에게만 머물게 될까. 그의 지극한 성정과 시적 바람기가 불러일으킬 이후의 행보가 무척 궁금하다.
3.
  • 부론강 
  • 이인휘 (지은이) | 목선재 | 2020년 10월
  • 14,000원 → 12,600원 (10%할인), 마일리지 700
  • 9.2 (8) | 세일즈포인트 :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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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론에서 살고 싶다. 소설을 덮으며 불쑥 솟구친 바람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소설 속 부론이 우리가 꿈꾸던 바로 그 마을이라 서? 아니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가 너무나 조화로워서? 이 때문이라면 소설 속 이상향은 숱하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부론의 치유력이다. 좌절과 절망을 앓던 사람들이 부론에 와서는 아연 생명력을 되찾는 것이다. 주요인물인 찬미와 원우는 물론이고 부론에 모여든, 상처받은 자들은 정신적 공황 상태를 이겨낸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러한 에너지를 전달했을까. 부론강이다. 뭇 생명의 원천이자 젖줄이기도 한 부론강이 수많은 곡절을 품어 위무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강의 이 포용력이 소설 속 인물들만 감싸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고 있는 내게도 건너와 강의 일렁임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읽는 나와 소설 속 경계는 자연 허물어질 수밖에.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부론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그들 곁에서 생생한 소설을 숨 쉬었다고 할까. 나는 이번 소설에서 이인휘가 강의 속살을 체득했다고 여긴다. 그윽하고 유현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가슴에 감기는 문장의 호흡도 깊어서 절로 저릿하다. 치달아오르던 이인휘 소설의 격정이 부론에 이르러 너그러운 생명의 강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 이제 부론에서 만날까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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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겪고 난 시인이 이른 곳은 어디일까. 몸의 시간일까. 우주의 시간일까. 몸의 시간이 유한함에 대한 떨림이라면 우주의 시간은 무한함에 대한 울림일 것이다. “시들어도 꽃은 우주의 중량을 품고 있”(「가을의 무게」)음을 포착하는 걸 보면 그는 몸의 시간인 떨림과 우주의 시간인 울림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삶의 진의를 느낀 자의 독백 같은, 여기와 저기의 경계를 넘어선 자의 깨달음 같은 통각들이 나지막이 깔린다. 나는 이 통각에 주목한다. 그는 아픔이라는 통각痛覺을 통해 마음속 우주가 열리는 통각通覺으로 나아갔음에 분명하다. 나는 새삼 놀라는 중이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사람의 숨결이 이렇듯 정결하고 가지런하다니. 정심淨心의 밑바닥에 고여 흐르는 여유로움을 보라. 그는 이 여유로움 속에 물과 바람과 별과 나무들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우주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적어 내려가는 시는 “우주의 부호가 되어/지상으로 내려”(「별똥별」)오는 별일 수밖에는 없다. 아마도 그의 시는 저 별이 소멸될 때까지 계속해서 쓰일 것이다. 아니, 저 별이 사라진다 해도 그의 시는 발화될 것이다. 그의 순정함이 기록한 시의 역사는 또다시 누군가의 입김으로 지상에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저 우주의 부호인 별자리가 모든 시인에게 허용되는 것은 아님을. 별이 되어 내리려는 자는 마땅히 스스로, “어둠에 선명히 새길/마지막 문장”(「별똥별」)을 각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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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불화를 딛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불화하는 시인은 고단하다. 순응과 타협의 유혹을 넘어서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시에 맺히는 불화가 아무리 힘들고 버거울지라도 허리 곧추세워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게 곧 시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라윤영의 시에 고이는, 불화의 뜨거운 시선이 나는 한없이 반갑다. 살아감의 고투가 안쓰럽게 배인 그의 시들을 보라. 시적 응전이 얼마나 드세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 그런지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어떤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이것을, 라윤영 시가 가진 불화의 활력이라고 믿는다. 불화를 통해 불화를 넘어선 삶의 숨결들을, 그의 시는 지금 여기에 불어넣는 것이다. 수많은 곡절과 아픈 수모들을 버텨 이룬 값진 성취에 함께 기뻐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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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도 괴물이 있다면 나는 최종천의 이번 시들이 단연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의 한 축은 분명 성경의 창세기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기대고 있지만, 그는 이 사유들에 결코 꿀리지 않는다. 그만이 펼칠 수 있는 기이한 시적 논리와 파괴적인 상상력으로 자본주의식 노동 착취와 인간의 종말을 예증하면서, 그는 성경과 비트겐슈타인을 돌파하고 벗어난다. 시에서 흔히 기피하는 관념의 가파른 경계쯤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종천의 이 시집은 가히 현대시학의 한 전위에 서 있다고 여겨진다. 언뜻 난해하고 버거울 수 있지만, 미묘한 지적 쾌감을 생성시킨다. 기대치 않았으나 뿌리치지 못할 뜨거운 매혹이다. 최종천의 창의적 노동이 열어가는 시적 결기에 덩달아 나도 충만해진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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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는 세상에 치여 “반쯤 깨진 얼굴들”과 “물에 잠긴 아이들” “오래전 먼 여행 떠나신 아버지”와 “이십 년 전에 숲에 묻힌 친구”를 위해 자기 시의 운명을 기꺼이 내어준다. 그는 자신보다 타자의 삶을 더 귀하게 모시는 시인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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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아킴 시의 품은 든든하고 넓다. 너끈히 세상의 여러 곡절들 끌어안고 나아간다. 슬픔과 아픔들 기꺼이 담지하면서도 그는 징징거리지 않는다. 다감한 눈길과 손짓으로 세상 맞아들여 가만히 안아줄 뿐이다. 온기 골고루 퍼져 있는 그의 시詩 품에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즐거이 평안을 나눈다. 고요 속의 역동 같은 흐뭇한 시적 교감이다. 나 아닌 것들 자꾸만 밀쳐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의 이같은 선의는 갸륵하고 고맙다. 새롭게 보이려 모나게 비틀어 적지 않아도 정감 고운 시는 사람들 맘속에서 스스로 새로워진다. 조화롭게 펼쳐져 이루는 김요아킴 시의 결이 놀랍도록 섬세하고 깊다. 우리 시단이 또 하나의 경사를 맞았음에 틀림없다. 그의 시를 느끼자 내게도 새로운 경계가 열린다. 가만히 들어가 흔쾌히 익히리라.
9.
이상국의 시에서는 어떤 맑은 간지러움이 스멀거린다. 마치 솜털의 일렁임처럼 감응하는 즐거운 떨림과 부드러운 숨결도 함께. 하지만 그 파동이 번져가는 속도는 느긋하고 수굿해서 충분히 시의 맘 부풀린다. 즐겁다. 시가 이처럼 즐거워도 될까 싶은 순간에 그는 슬쩍, 천진한 일상들 펼쳐놓는다. 안타깝고 부끄럽고 서럽고 가난한데, 그게 참 묘하게 달곰새금하다. 예기치 않은 해학조가 시의 본성을 차근히 휘감아서일까. 시를 읽는 입꼬리 발그레 달아오른다. 하지만, 주의하시라. 잔잔한 듯 격렬한 그만의 마성이 범상의 언어를 뒤흔들고 있으니. 그의 시에 들면 혼탁한 것들도 제풀에 맑아지지만,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다. 사물에서 놓여난, 아니 사물을 놓아버린 작희가 더없이 유현해서 정신 혼미해진다. 훌훌, 인위를 벗은 시의 행보는 또 어떤가. 겸양의 품성이 받아적은 나날의 세목이 다사롭고 그윽하다. 때로, 아닌 것에 대해서도 결기 세우지만 그마저 긍휼을 더듬는다. 시와 시인의 자유로움이 이쯤은 되어야 시에 막힘이 없다 할 것이다. 드물게 만나는 시의 한 진경이 여기, 우리 앞에 있다.
10.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빈방은 눅눅하지만, 이 빈방 있어 우리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비정한 현실에 치인 쓸쓸함이라든지 외로움들에게 이 피정은 든든한 움집일 것이다. 그러니 김이하라는 저 빈방, 그늘에 머무는 이 애틋함들 어찌 쉬 버릴 수 있으랴. 다만, 저 빈방에 재잘거리는 햇살들도 가끔은 찾아오기를. 더 오래오래 우리 함께 숨쉬기 위하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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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목청을 가졌지만 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섬세하다. 섬세할 뿐만 아니라, 고전음악이 가라앉아 고인 감성 세계는 그윽하기까지 하다. 그가 날것의 소리를 내지르고자 해도 서정의 음색을 지우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서 비롯된다. 살짝 비껴나고 어긋나 있다. 그런데 난 이 조합에 적잖이 홀린다. 여기, 목덜미 불그죽죽한 사내가 고운 음성으로 노래 부르며 은단 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시의 정경이다. 새로운 서정의 진앙이 움실움실 터져 나오는 지경에, 박시우가 서 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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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순응이 아니라, 거부에서 나온다. 체제에 순응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비판과 저항과 거부야말로 모든 예술의 목숨이다. 이 책은 그 목숨들의 가치를 저항의 노래들을 통해 새롭게 복원한다. 나는 여기 기록된 노래들을 다시 찾아 들으며 새삼 가슴 뜨거워졌다. 이미 사라졌다고 여긴 불굴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뭉클하는 울림이 쩌르르 퍼지더니 늙어버린 분노와 삭아버린 열정에 어떤 심지가 불쑥 켜졌다. 낡지 않는 노래들의 생동하는 저항이다. 나는 이 에너지들을 받아 읊으며 든든한 동지들을 얻은 것처럼 벅찼다. 이 책을 펼치는 당신께도 나와 같은 기운 담뿍 스며드리라 믿는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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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시간들이” 그의 “몸 여기저기를 파”낼 때 저 우주 어딘가에서는 시 한 편이 몸을 풀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그의 “머리털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하여 아내에 의해 “여덟 군데”가 찾아질 무렵쯤이면, 그는 이미 저 우주에 여덟 편의 시를 적어 놓은 것이다. “아내는 시 쓰지 말라”고 화를 내지만 그러니 어찌 이 숭고한 행위를 그가 멈출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몸 파낼 때마다 우주에 새겨지는 저 귀한 탄생을. 이제 당신도 알게 되고 나도 알게 되었지만, “혁명이란” 바로 “저런 게 아닌가.” 우리 몸을 떨어져 나간 “빛점들이” “불의 언어가 스며든 검은 우주”에 별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별들은 다시 그의 시심에 내려 불의하게 “잘린 줄기에 핏기가” 돌게 하고 미친 대지를 다독거린다. 박순호 시의 큰 흐름이 이와 같으므로 나는 그를, 생의 순환과 위무의 시인이라고 두렷하게 부르고자 한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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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신가요, 하고 물어보면 행복하다고 미소 지을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요? 열 중 아홉 명은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고 있지 않을까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저 숱한 사람들 표정을 좀 보세요. 왠지 화난 것 같지 않나요? 저 얼굴 어디에도 행복은 스며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힐링과 치유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힐링과 치유만이 살 길인 듯, 모두가 그쪽으로 치달려갑니다. 그만큼 현대인의 피로도가 쌓여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스스로 목숨 버리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요. 경쟁과 소외에 짓눌리다가 마침내 저를 던져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힐링과 치유는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의 대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무엇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을까요? 가만히 혼자 생각해봅니다. 혹 행복을 목적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행복은 느낌입니다. 지향이 아니지요. 저기 어디라고 설정한 뒤 정신없이 몰아간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서 절실히 느끼는,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행복에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화가 함께합니다. 바로 여깁니다. 이 지점에서 ‘행복한 문학편지’가 태동했습니다. 편지라는 형식으로 문학과 행복의 따뜻한 만남을 꿈꾼 것이지요. 컴퓨터로 주고받은 메일이긴 해도, 편지여서일까요? 아니면 시인, 작가들이 써가는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서일까요? 귀가 절로 열리고 눈가가 촉촉해졌다는 사람들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마도 빼어난 문학과 정감 어린 편지글의 공명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그 공명이 문학나눔 사이트를 넘어 책장 갈피갈피에서 피어날 것입니다. 버거운 생의 나날을 위로하는 고운 손길이길 바랍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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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망가지는 것이 어른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강과 함께 놀고, 강과 함께 커 가는 아이들이 더 큰 걱정입니다. 강의 마음으로 자라는 버들이 같은 아이에게 강은 온 세상입니다. <할머니의 강>은 바로 그 강과의 어우러짐을 살피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강을 살리고 싶다고요? 그러면 얼른 책 속으로 들어가세요. 버들이와 할머니가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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