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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박연준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0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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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큰글자책]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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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2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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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멀리서 보면 이 책은 오래전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통념에 저항하다 사라진 자의 ‘옛날’을 그린 이야기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 책은 어느 하루, 한나절, 잠시라도 온전한 나로 살고 싶어 하다 스러진 자의 ‘현재’를 그린 이야기다. 작가의 분신이자 화자인 ‘실비’는 ‘앙드레’를 둘러싼 상황을 목도하는 자, 관찰하고 발설하는 자다. 사회의 편견, 종교와 성, 계급 아래에서 자신으로 사는 게 불가능한 여성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주시하는 자다. 앙드레는 보부아르에게 평생의 화두이자 ‘자신을 대신해 죽은 여성’이었을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던 여자아이가 사회의 통념과 가부장제에 눌려 서서히 빛을 잃어 가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이 소설 앞에서 묵은 통증을 느낄 것이다.
2.
가장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산문을 쓰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읽는다고 배울 순 없겠지만 맛볼 순 있다. 메리 루플은 특별하고 싶은 마음 없이 특별함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다.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간절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나는 메리 루플의 모든 문장에서 ‘간절한 결기’를 느낀다. 간절함이 욕망을 앞서면, 비로소 특별해진다. 욕망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성큼성큼 걸어갈 때, 이야기는 비로소 빛난다. 가령 이 책의 아름다운 첫 문장을 보라.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 나는 이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아니라, 이 문장이 책을 열고 걸어 나오는 첫 순간, 내리는 눈처럼 무구히 시작하는 태도에 반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반하고야 만다.
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26일 출고 
삶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삶은 모락모락(毛落毛落)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가는 것! 작가는 어떻게 알았을까? 인생의 비밀을. 찬란하고 아름답고 조금은 쓸쓸한 인생을 맨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우아하고 다정하다. 한 올 한 올 머리칼을 쓸어넘기듯 책장을 넘기다보면, 책장만큼 작게 펼쳐진 누군가의 인생이 강물처럼 흐르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눈은 울고 싶어하고 입은 웃고 싶어하는, 이상하게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4.
그를 처음 만난 교실을 기억한다. 백지를 내밀면 종이를 박차며 태어난 듯한 언어로 가득한 시를 써서 돌려주던 이, 그가 해서였다. 나는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태어나려는 자의 절박함, 화기로 단련한 눈빛! 그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그의 첫 책을 기다렸다. 시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시를 내내 ‘간직’하는 일임을 그가 깨달은 뒤부터, 그의 쓰기는 자유로워 보였다. 붕붕 날고 깊이 침잠하고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났다. 이 책은 열심과 성심, 빛과 그늘, 불과 얼음으로 돌본 성 같다. 문장은 열매를 모르고 태어난 씨앗처럼 순전히 빛난다. ‘답장이 없는 삶’을 향해 끝없이 편지를 띄우는 이의 뒷모습을 보라. 우리는 지금 막, 아름다운 작가이자 태어나는 중인 시인 한 사람을 새로 얻었다!
5.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 * 192쪽의 종이가 하나로 쭉 이어져 한 권의 책을 이루는 아코디언북입니다.
앤 카슨은 슬픔을 연주한다. 그는 엎질러도 끊어지지 않는 '계단의 슬픔' 위에서 질겅질겅한 '감정의 질감'을 연주한다.
6.
나는 이주란의 소설을 사랑한다. 그의 소설은 극적인 장면 없이 고루 팽팽하고, 대단한 플롯 없이 완벽하며, 시 없이 시로 가득하고, 청승 없이 슬픔의 끝점을 보여준다. ‘도―’라는 음계만으로 이루어진 음악 같고, 연노랑으로 그린 핏물 같고, 발 없이 멀리 가는 구두 한 켤레 같다. 내가 잘 아는 세계, 잘 아는 사람이 오래 지켜온 비밀을 모아둔 화단 같다. 이번 소설의 인물들은 새처럼 조금, 지저귀듯 말하고 초식동물처럼 천천히 오래 먹는다. 날씨와 식사, 수면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돌보는 일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이다. 이주란이 만든 작고 가벼운 종이배 위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슬픈데 한 톨의 격정도 없이, 기어이 순해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깨끗해진 기분이다. 누군가가 나를 씻기고, 먹이고, 재운 것 같다.
7.
“어떤 이야기는 길어서 행복하다. 이 소설이 그랬다. 읽는 내내 행복에 취해 이야기라는 크고 높은 언덕에서 오래 걷고 싶었다. 읽으면서 여러 번 눈물을 글썽였다. 죽음이 삶의 연장선이고 삶이 그 이면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엔 이런 게 들어 있다. 날씨, 바다, 기차, 기다리거나 떠나는 일, 유령의 외로움, 인간의 그리움, 재, 상처, 치유, 삶과 죽음의 연속성, 유머, 노래, 시, 우정, 사랑, 생을 다채롭게 하는 것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당신은 이야기 끝에 비로소 돋아난 “자기 앞의 생”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에게 딱 하나씩 주어진 선물이자 눈물인, 자기 앞의 생.”
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1월 26일 출고 
안희연은 누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귀를 먼저 내미는 사람이다. 그는 잘 듣는 사람, 열린 사람, 그리하여 ‘다르게’ 보는 사람이다. 그게 시에 관한 거라면,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린다면, 산뜻한 대답이 필요하다면, 나는 항상 안희연을 찾는다(그도 잘 알 것이다). 그의 눈과 귀, 입과 ‘쓰는 손’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일상과 걸음, 시선과 사유, 다정한 태도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단어에서 시작해 생활의 복판에서 끝난다. 문장은 쉽고 따뜻하며 빛난다. 언어를 오래 살피는 사람이 종국에 어디에 도착하는지, 그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난다. 읽는 내내 귀가 활짝 펼쳐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내는 소리라면 허밍이라도, 단 한 박자도 놓치고 싶지 않다.
9.
생각해 보면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하던 시간 안팎으로 술이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처음 술을 마셨던 시간, 술로 사고를 친 순간, 금주를 다짐하던 순간, 고통을 덜고 흥을 돋우며 술로 인생을 탕진하던 복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잠은 안 오고 먼 곳 생각으로 뒤숭숭한 밤이나 혼자 앉은 소슬한 저녁, 일상에 치여 지쳐 버린 아무 때, 어디든 펼쳐 읽으면 좋을 책이다. 시원한데 가볍지 않고, 청량한데 깊은 글들이 ‘콸콸’ 담긴 술병 같은 책이다. 읽는 동안은 잠깐 갈증이 가셨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아, 술 한잔하고 싶다.
10.
이토록 시 같은 언어를 그는 왜 시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질문을 수정한다. 그에게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가 있기는 할까? 이 책은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더 슬프다는 것을 아는 자의 찬 독백이다. 그의 슬픔은 차고 맑다. 문장은 첫눈 같다. 책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말들이 녹아내릴 것 같다. “무엇이든 나는 얇아지고 있어요. 하얀 구름 같은 게 뜯겨나가는 걸 느껴요.”라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잠깐 순도 높은 ‘슬픔의 결정(結晶)’을 손에 쥐어본 듯한 기분이 든다.
11.
  • 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 안희연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 15,000원 → 13,500원 (10%할인), 마일리지 750
  • 9.4 (26) | 세일즈포인트 : 3,921
안희연은 누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귀를 먼저 내미는 사람이다. 그는 잘 듣는 사람, 열린 사람, 그리하여 ‘다르게’ 보는 사람이다. 그게 시에 관한 거라면,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린다면, 산뜻한 대답이 필요하다면, 나는 항상 안희연을 찾는다(그도 잘 알 것이다). 그의 눈과 귀, 입과 ‘쓰는 손’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일상과 걸음, 시선과 사유, 다정한 태도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단어에서 시작해 생활의 복판에서 끝난다. 문장은 쉽고 따뜻하며 빛난다. 언어를 오래 살피는 사람이 종국에 어디에 도착하는지, 그를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난다. 읽는 내내 귀가 활짝 펼쳐져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내는 소리라면 허밍이라도, 단 한 박자도 놓치고 싶지 않다.
12.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가 ‘비밀을 보여주는 방식’을 주목해야 한다. 정다연 시의 비밀은 제목과 시 사이의 ‘거리 조율’에 있다. 그는 이 거리를 자유로이 조율한다. 이때 시의 음색이 탄생하고, 언어가 지나다닐 징검다리가 놓인다. 중요한 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가 계속해서 가고 있다는 믿음”(「커트 피스」)이다. 화자들은 미리 기뻐하거나 미리 슬퍼하는 법 없이 ‘적당한 때’를 기다려 방 안에서 홀로 피고 진다. 언어는 섣부름이 없다. 명확하고 단정하며 날카롭다. 읽는 이의 가슴 복판을 지그시 누른다. 정다연은 “시가 눈에 보인다면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데 전부를 쓸” 사람, 그리하여 “시가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셰플레라」), 보이지 않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아 고단해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시엔 이런 게 들어 있다. 혼자 자라는 어두운 열매, 빛 없는 눈부심, 땅 없는 광야, 고요한 광활함. “빛과 바람을 주세요/나는 내 방을 뒤덮는 이 어둠보다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분갈이」). 맑게 퍼지는 주문. 농담 속 진담. 진담 속 농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불타는 연필을 지켜보는”(같은 시) 일, “가두어놓을 수 없는 바람”(「호명되지 않는 기쁨」)에 기대어 잠시 날아보는 일, “울 마음이 없어서//웃는 사람”(「지금은 상영할 수 없습니다」)을 생각하는 일이다. 제대로 읽으면, 마지막 장에서 열개, 스무개, 서른개의 발자국이 종이 바깥까지 이어져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우리 걷기를 포기하진 말자」). 그 발자국을 따라, 같이 가고 싶다. 계속. 계속. 걷고 싶어진다.
13.
문보영의 소설은 선율이 아니라 리듬이 주인공인 음악 같다. 리드미컬하고 엉뚱하고 집요한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음악. 읽다보면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휩쓸리기, 웃기, 울기, 놀라기를 경험하다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게 인생이잖아! 그의 문체에는 유머와 상상, 림보와 춤이 들어 있다. 규정을 거부하고 짜임에서 자유롭다. 만약 생각에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재미있는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14.
우산의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는 일 이 시집엔 조임이 없다. 나사가 없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를 느슨하게 거닐 수 있다. 킥킥 웃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슬퍼질 수 있다. ‘한적한 외로움’은 이 시집이 입은 옷이다. 쓸쓸할 때마다 비석이 세워지는 정원이 있다면, 이 시집의 정원에는 이쑤시개처럼 작고 마른 비석들이 여름비처럼 모여 서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보면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시 속 화자들은 여기에 있고, 여기에 없다. “머랭”처럼 순하고 언제든지 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밤에 손톱을 깎으며 쥐를 기다린다. “내 손톱을 깨물어 먹어요/오늘부터 나로 살아요.” 말하거나 “세상에 없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도 사랑도 없는 외로운 공간”에서 없는 “영구”를 생각한다. 없음. 영구 없음. 흐느낌 없음. 청승 없음. 기다림 없음. 외로움 없음. 시련 없음. 그러다 문득 한꺼번에 슬퍼짐. 녹아 사라짐. 없는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거기)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게 부끄러워서, 추워서, 가난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거기”에 있다. 사라짐은 존재를 투명하게 숨겨, 잠자코 생을 견디는 일이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거기에 있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쪽으로 오기를? 아니다. 그건 아니다. “구름을 따라가면/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고, “우산 사세요, 우산 사세요/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우산이 된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는 일이다. 비처럼 기다랗고 축축한, 그 사람의 둘레가 되고 싶어 하는 일이다.
15.
미국에 ‘빌 브라이슨’이 있다면 한국엔 ‘김혼비·박태하’가 있다. 곳곳에 유머가 주단처럼 깔려 있다. 유머가 반짝이려면 그 속에 바늘 같은 예리함이 박혀 있어야 하는 법! 이들의 유머는 뾰족하고 시원하다. 지나치게 근엄한 사람이 아니라면 두세 페이지에 한 번씩은 웃게 되리라.
16.
동화는 아이가 사회로 나가기 전 제일 처음 여는 문이다. 이 문을 통해 아이는 최초의 넓은 세계, 인간 군상, 존재의 성장과 변화, 사건의 인과를 배우게 된다. 그 때문에 동화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어맨다 레덕은 “동화에서 시작해 오늘날 정치, 환상, 그 밖의 다른 이야기들에서 장애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 본인이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아로서 겪어 낸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의 지난했던 성장 체험을 들려주기에 이야기에 더 몰입해 읽게 된다. 장애가 다름이라면, 동화는 교묘한 방식으로 ‘다름’을 응징해 왔다. 저자는 주인공이 남들과 달라서 겪게 되는 고난에 주목한다. 주인공이 장애를 갖고 있어도 그건 ‘극복의 대상’이며, 이야기의 결말엔 사라지거나 마법으로 해소된다. 이 책은 현실에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동화가 어떤 식으로 박탈감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동화가 우리에게 주입해 온 정상성에 대한 기준, 미추에 대한 정의, 선악의 구분, 행복의 조건 등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전파되어 온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확신하건대 이 책을 한번 제대로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의식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세상은 개개인의 무수한 ‘지각 변동’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 책을 간곡히 추천하고 싶다.
17.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끝까지 읽었을 때, 이상하게도 이 사람을 변호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가 그리는 시 속 화자는 세상에서 늘 져 온 사람이라고. 세상에서 ‘납작해지느라’ 온 시간을 쓴 사람이라고. 멀끔한 꼴은 아니지만 비범한 구석이 있다고.
18.
울프의 목소리가 가득한 곳, 몽크스 하우스 쓰는 사람은 종이를 파내려가는 사람, 종이 위를 거닐다 그 안에 갇히는 사람이다. 쓰는 사람의 어둑한 영혼과 굳은 몸을 돌볼 수 있는 건 땅과 식물의 푸른 기운, 그리고 조용한 생활일 터. 책을 펼치면 몽크스 하우스를 거니는 버지니아 울프와 정원을 돌보는 레너드 울프의 시간이 온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우리는 작은 벌처럼 날아다닐 수 있다. 벌의 비행을 두고 사색하는 울프의 모습을 수 있다. “벌들이 붕 소리를 쏜다. 욕망의 화살처럼. 격렬하고 관능적이다. 허공에 실뜨기를 한다. 실 가닥마다 붕 하는 소리 하나씩. 온통 떨리는 대기.” 작가는 몽크스 하우스의 현재 모습과 울프가 남긴 기록을 교차해 보여주며, 울프 부부의 생활을 상상하게 한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던 그들의 핍진한 생활을 불러온다. 이야기의 중심은 언제나 정원이다. 정원을 둘러싼 그들의 일상과 소요자로서의 시간을 보여준다. 보라. 침실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지르는, 새로 지은 집필실(오두막)을 향해 걸어가는 울프의 가벼운 몸짓! “[내일은] 붉은 장미의 향기를 맡을 거예요. 잔디밭을 부드럽게 가로질러 가서는(저는 마치 머리 위에 계란이 든 바구니를 올려놓은 듯 걷는답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집필대를 무릎 위에 놓는 거죠. 그러고는 잠수부처럼 어제 쓴 마지막 문장을 향해 아주 조심스레 내려갈 거예요.” 그에게 정원은 숲으로 이루어진 바다, 글을 쓰기 위해 들어가 잠그면 누구도 열지 못하는 초록 문이었을까. 당신은 이상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 꽃들이 전부 피어나고 있어. 우린 아침으로 배를 먹어.” 울프의 목소리로 가득 찬 곳으로.
19.
백수린의 문장은 우아하고 침착하다. 함축적이지만 꼼꼼하다. 조약돌을 손에 쥔 자가 지휘하는 단단한 음악 같다. 끝나면 음악도 지휘자도 사라지지만, 손에 조약돌 하나가 쥐어져 있는 ‘수상한 환희’를 느낄 수도 있다. 이곳에서 슬픔은 머금은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흐르는 아름다움이다.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이는 것”이다. 소설을 읽다 종종 턱을 괴고 먼 데를 보거나 종이에 의미 없는 표식을 그리곤 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불투명한 창문 유리 그 너머, 그 너머로, 비밀스러운 날갯짓을 흘리며 날아가는 새를 본 듯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가장 우아하게 말하는 법. 그런 걸 찾는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20.
“책의 차례를 보고, 나는 읽기 전부터 전율했다. 과장이 아니다.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몸을 이루는 기관 하나씩을 정해서 쓴, 내밀하고 시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읽으며 ‘상상력과 관찰’이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매혹’으로 읽히는 이유는, 사실보다 진실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들의 태도 덕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자기 몸과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1.
이 책에는 기자 조민진의 1년간 런던 생활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유롭고 충실한 런던 생활자다. 그림을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 나가고, 영국식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우고, 미술관과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혼자 와인을 마시는 사람. 한손에는 자유, 한 손에는 고독을 쥐고 뚜벅뚜벅 걷는 이방인. 무엇보다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사람. 먼 나라에서 보고, 듣고, 쓰고, 읽고, 마시고,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즐기고, 움직여보면 안다.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워서 몸이 꽈배기처럼 꼬인 걸 풀어내느라 혼났다. 다만 이 멋진 경험을 질투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솔직하고 정갈한 문체, 닦아놓은 창문처럼 말간 문장에 반해서다. 꼭 내 경험이 아니어도, 당신의 행복한 경험이 곧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다.
22.
인생이 백 가지의 색깔로 이루어졌다면, 사강은 아흔 가지 이상의 색을 고루 사용해본 사람이다. 비범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쩌다 우연히 히트작을 낸 게 아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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