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경(鄭潤卿)이 있었으니, 이름은 來僑(내교: 1681-1757)이다. 당시의 학사 대부들이 그와 가깝게 사귀며, 집으로 데려와 그 자제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의 사람됨이 말끔해서 마치 여윈 학 같았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매우 가난해서 집에는 바람벽만 썰렁하니 둘려 있었다. 시사(詩社)의 여러 벗들은 술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그를 불렀다. 그는 실컷 들이마셔 자기 주량을 다 채웠다. 흐더분히 취한 뒤에라야 비로소 운을 냈는데, 높직이 걸터앉아 남보다 먼저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