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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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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닭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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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

제주 서귀포 서남쪽 시골 마을에서 암탉 여덟, 강아지 하나, 어린이 둘, 반려남자와 산다. 매일 아침 강아지와 동네를 달리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달걀을 꺼낸다. 하나씩 천천히, 또박또박, 매일의 삶을 정성껏, 따뜻하게 살고 싶다. 달걀 후라이는 써니 사이드 업. 무조건 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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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닭큐멘터리> - 2024년 5월  더보기

금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면 ‘그’의 주말 의례가 시작된다. 먼저 나무 조리대에 덧가루를 흩뿌리고, 냉장고에서 발효종을 꺼내 그 위에 조심스레 올린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더해 발효종과 잘 섞이도록 반죽한다. 반죽을 통에 넣어 그대로 두었다가 30분 후 꺼내어 다섯 번 접는다. 다시 30분 쉬기 - 접어주기를 서너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판이하다. 발효기와 이스트 같은 촉진제 없이 자연 발효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저녁에 시작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너끈히 빵을 구울 수 있지만, 한겨울엔 목요일 오후에는 시작해야 토요일 아침에 빵을 먹을 수 있다. 시간만 간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스트 역할을 하는 천연 발효종은 냉장고에 두고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워야 한다. 온도나 습도가 어긋났다가는 과하게 발효돼 시큼해지거나, 발효가 덜 되어 제 역할을 못한다. 그러니 그의 주말 의례는 주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끈질기게 신경쓰고 지켜봐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군말 없이, 아니 기쁘게 하는 사람이 내 남편 ‘필’이다. 필은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직접 만들고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홈베이킹뿐이랴, 가구도 만들고, 술도 담그고, 집도 짓는다. 필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조직이라는 수레바퀴를 굴리는 수많은 톱니 중 하나로서 매일을 성실하게 반복했다. 그랬던 그가 달라진 것은 우리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부터다. 우리는 경기도 신도시에 살다가 10년 전 제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첫 집은 임대한 단독주택이었다.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 꾼 ‘실외 공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럴 때 보통은 대파나 바질처럼 재배하기 쉬운 채소로 텃밭을 시작하기 마련 아닌가? 필은 달랐다. 그가 사온 것은 싱그러운 대파 대신 미끄덩한 지렁이 한 상자였다. 음식물 처리를 맡기고 싶다면서. 일 년 반 뒤에는 넓은 마당과 텃밭이 있는 시골집을 빌렸는데, 때마침 육아휴직에 돌입한 필은 생산력, 창조성을 폭발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쓸 책상과 의자를 직접 짜고 내 손에 꼭 맞춤한 나무 코바늘을 깎아 주었다. 지렁이에 순서를 빼앗겼지만 텃밭을 가꾸어 각종 채소를 공급했다. 이어서 천연 발효빵을 굽고, 누룩을 빚어 이화곡주를 담그고, 맥주를 만들고,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갔다. 필 덕분에 제주 생활을 계획하며 꿈꾸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전원생활이 현실로 펼쳐졌다. 평화… 풍요… 필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메주까지만 쑤었다면 나는 이 책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제주도, 마당 있는 집, 다정한 남편, 건강한 아이들, 자급자족 생활은 부러움이나 동경의 대상일 뿐이니까. 이 책의 기획자가 말했다. “부러움은 인스타그램에서 느낍시다. 책은 글쓴이가 고난에 빠져야 나오는 거예요. 독자는 글쓴이의 위기를 원한다고요.”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필은 내 입에서 “뭐라고?” 소리가 나오는 것들을 기르고 싶어 했다. 상추를 ‘기르고’, 발효종을 ‘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름들을 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벌? 필은 “벌을 치고 싶다”고 했다. 야산 깊숙이도 아니고 집 마당에서. 우리 둘만 사는 집이라면 모를까, 애가 자라는 집 마당에서 벌이라뇨? 대번 반대했지만 직접 딴 꿀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옆눈으로 흘겨보면서도 입은 슬금슬금 웃는, 괴상야릇한 표정으로 양봉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필은 양봉에 진심이었다. 꿀을 따겠다기보다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벌을 키울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일종의 실험에 가까웠다. 화학 물질인 파라핀으로 만든 관행 벌통이 아니라 천연 밀랍을 이용한 벌통을 직접 만들고, 벌에게 치명적인 진드기인 응애를 퇴치하는 방법도 고안했다. 여러 모로 공부하고 정성을 쏟은 덕에 ‘자연을 위해 벌을 키우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까지 이르렀다. 이후 필은 개미, 도마뱀, 각종 바다 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을 키웠다. 가능하면 ‘알’ 단계에서 시작했고 도구도 기성품을 사는 법이 없었다. 처음부터 오롯이 자기 손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르기를 좋아했다. “아유, 남편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필은 모든 일을 알아서, 사고 없이 해냈다. 도와달라거나, 저질러 놓고 뒤처리를 맡기지 않는다. 따라서 옆 사람이 골치 아플 일도 없었다. 그저 “이번엔 뭘 만드시나~” 하고 팝콘을 옆구리에 끼고 지켜보다가 떨어지는 꿀이나 얻어 먹으면 그뿐! 딱 그럴 때쯤 사건이 일어난다. 벌이 분봉˚하는 시기를 미리 알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바람에 겪었던 사소한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비하면) 일이랄까. 창 밖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슬쩍 내다봤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컴컴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창에 바싹 붙었다. 가로세로 5m쯤 되는 텃밭 하늘을 벌 떼가 까맣게 뒤덮었다. 철새 도래지에서 수천 마리의 철새 떼가 펼치는 공중 군무를 본 적 있는가? 정말 장관이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와아~~~”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런데 벌의 군무는, 그냥 온몸을 굳힌다. “악!” 소리가 절로 난다. 그 침착한 필이 우왕좌왕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소한 사건 하나 더. 겨울에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마른 나뭇가지에 거품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는 사마귀 알집을 왕왕 만난다. 예상했겠지만 필은 사마귀를 키워 보겠다며 가지째 꺾어 와서는 유리 어항에 넣어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두었다. 새끼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입구는 종이로 막았다. 겨울이 한 발 물러났지만 바닷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씨였고, 사마귀는 완연한 봄이 되어야 부화할 터. 그러나 볕이 잘 드는 실내 어항 속 사마귀 알들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판단했고, 어항 입구를 막은 종이는 끝없이 밀려 나오는 사마귀 새끼들의 독립 의지를 막지 못했다. 어린 생명체란 대체로 예쁘다. 하지만 사마귀 새끼는…. 갓 부화한 그것은 투명에 가까운 연두색으로 1cm가 채 못 된다. 그런데 생김새는 성체와 똑같다. 게다가 수천 마리. 초미니 투명 사마귀가 거실 벽과 천장을 다글다글 기어다닌다고 상상해보시라. 어린 생명에게 이런 표현을 다는 게 미안하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징그러움’이 몰려온다. 투명 사마귀 떼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인도주의 아니 충도주의蟲道主義에 다소 반하므로 말을 줄이겠다. 필의 다채로운 사육 종목 중 그를 가장 만족시킨 것은 양계, 즉 ‘닭’이었다. 양계란, 올림픽으로 치자면 철인 3종 경기처럼 모든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었다. 알부터 시작하고, 부화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으며, 인간과 정서적 소통도 가능하고, 심지어 먹거리가 된다. 필이 양계를 시작한 계기는 이렇다. 세를 얻어 들어온 시골집에 닭장이 있었다. 끝! ‘닭장이 있었다’가 ‘필’을 거치면 ‘닭을 친다’는 결과가 나오는 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 책이 펼쳐지고 있음을 일러둔다. 집을 보러 왔다가 빈 닭장을 발견했을 때, 필의 머릿속에 펼쳐졌을 불꽃놀이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나무가 크면 그림자도 길다는 것. 양봉이 꿀 몇 병과 곤란한 상황 한두 번을 가져다 주었다면, 양계는 매일 아침 암탉들이 낳는 달걀 수보다 많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전능과 무력, 당연과 모순의 순간들을 데려왔다. 필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양계라는 세계에 우연히 발 하나 들여놓은 것뿐인데, 이후 우리 가족에게 밀려온 복잡미묘한 감정과 화두를 풀어놓으려 한다. 필의 ‘실험과 생명의 농장’ 구성원 중 왜 닭이냐 물으신다면, 닭의 온 생애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닭이란 후라이드치킨 아니면 냄새나고 아둔한 존재, 또는 징그럽거나 무서운 동물일 것이다. ‘닭’과 ‘아름답다’의 매칭은 낯설지만, 닭을 알고 나면 당신도 말할지 모른다. “닭의 온 생애가 아름답다”라고. 이 책은 양계기를 빙자한 관찰기다. 각자의 취미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나의 반려남자, 제주에서 태어난 두 아이, 후라이가 될 팔자를 고치고 병아리로 거듭난 수퍼마켓 유정란, 천수를 누리며 늙어가는 암탉, 알아듣거나 말거나 제주어를 흩뿌리며 지나가는 이웃들, 그리고 내 편인 듯 찬란한 순간들을 쏟아내다가도 일순 가혹하게 돌아서는 제주 자연까지. 우리 집 닭장을 둘러싼 존재와 풍경의 관찰기를 내놓으니 포근한 봄날, 암탉 품 속의 병아리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즐겨주시길. 2024년 양계인 효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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