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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오 포(Dario Fo)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 준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다. 역장인 아버지와 농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리오 포는 대학에 입학한 후 생계를 위해 전시회장 세트를 장식하는 보조사 노릇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흔들리는 기차를 타고 다니며 착취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4세기로부터 16세기에 이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법과 16∼17세기의 주된 연극의 흐름이었던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열중하다가 이후 연극에 구체적인 흥미를 갖고 진로를 전환한다. 연극인으로서 다리오 포는 흥행을 보장해 주는 당시의 제작 배포 체계의 조건에 따르며 한때 금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흥행과는 곧 단절을 고하고 일관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1965년에 다른 어떤 쟁쟁한 극단들보다도 많이 공연하고 많은 수입을 거뒀다. 70편이 넘는 그의 작품들 중 대다수가 노동자나 관객들이 직접 요청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었다. 1970년에는 공산당에서 탈당해 극단 ‘라 코무네’를 조직해 활동했다. 사회의 부정부패, 압제를 풍자적으로 고발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 결과, 포는 1980년 미국 입국 비자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권력층에 대항해 싸우며 늘 힘없는 자들 편에 서려던 그의 실천적 노력은 1997년 노벨상 수상이라는 성과로 이어진다. 2016년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스테로 부포> 공연을 치러 냈던 다리오 포는 10월 13일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날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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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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