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나를 키우는 일
그때의 어떤 하루가 그려집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미루나무 찰랑이는 소리를 우두커니 듣다 눈물을 떨구던 아이. 마당의 탐스런 수국을 바라보다 훅 밀려오는 외로움에 몸을 웅크렸던 아이. 그 아이는 자주 서성댔고 엄마를 그리워했습니다.
마음 한 켠 어딘가에 아직 자라지 않은 한 아이가 숨어있어 그 아이를 불러냅니다. 내 아이들이 자랄 적에도 어린 손녀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그 아이가 혼자 놀고 있어그 옆에 나란히 앉곤 합니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마다 책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 오늘은 들어앉아 책이나 읽어야지’
그곳에서 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심심했습니다. 그 여운으로 며칠을 살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섭니다. 시끄럽게 부대끼고 소란스레 놀다 들어오면 머리가 아프고 어딘가 허전했습니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몸짓은 글쓰기였습니다. 상상하고 꿈꾸지만 숙달되지 않은 글은 결국 나를 관찰하고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세계는 만사 제치고 아무튼 피아노입니다.
내가 잘하지 못함에도 계속하는 공부, 무용(無用)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은 피아노 레슨을 받는 일입니다. 일정한 시간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은 내 고적(孤寂)의 시간입니다. 손가락 터치 하나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침묵하고 고요해야 했으므로 글쓰기와 피아노는 많이 닮아있습니다.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래의 내 삶도 ‘담담한 나’를 키우는 일, 독서와 글쓰기 피아노와 더불어 수월하게 지나가기를 바래봅니다.
글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는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여태 써온 글을 책으로 엮습니다. 책을 내도록 꿈을 심어주고 다양한 독서와 글쓰기로 이끌어 주신 권남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 고맙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만큼 평온하기까지 애쓴 나의 가족, 사랑하는 남편과 잘 자란 아들 준기, 딸 주영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며느리 신혜와 사위 대성이 손녀 재인이 지아, 손주 준호에게 달콤한 사랑을 전합니다.
2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