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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眞道)헤이안시대(平安時代) 초기의 문인 관료다. 선조는 백제 근구수왕의 후손이라고 하며 원래의 성은 쓰노무라지(津連)였다. 790년에 스가노노아손(菅野朝臣)으로 개성(改姓)했다. 간무천황(桓武天皇)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조궁량(造宮亮)으로서 헤이안경[平安京, 현재의 교토(京都)]으로 천도하는 과정에 깊이 개입했다. 805년 간무 천황 앞에서 후지와라노 오츠쿠(藤原緖嗣)와 이른바 덕정논쟁(德政論爭)을 벌였다. 오츠쿠는 북방의 이민족인 에미시(蝦夷)와 전쟁의 중지와 토목 공사의 중단을 건의했고, 마미치는 이에 반대했다. 최종 관위는 종3위, 관직은 참의(參議)였다. 간무 천황의 명령으로 797년에 ≪속일본기≫ 40권을 완성했고, 격식(格式) 등의 법령집 편찬에도 간여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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