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물을 올립니다. 여기 묶인 예순 편의 이야기는 들킬 수밖에 없는 저의 일부분이라서 당장 숨을 곳을 찾는 게 먼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찻물이 끓으면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오랫동안 차를 마시려고 해요.
어땠나요, 라고 묻는 건 관두고 다만, 빈 찻잔에 뜨거운 차를 다시 채울까 해요. 제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당신 덕분입니다.
시간에 관해 자주 생각합니다. 낭비벽이 심해서 시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살았네요.
낭비할 수 있는 게 시간뿐이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괜한 일에 참 많이도 기웃거렸구나 싶어요.
‘수기水記’를 쓰고 오 년이 흘렀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도 퍽 담담했지요. 뭐랄까. 이건 너무 나답구나, 싶었달까요. 별수 있나요.
남아 있는 나날도 살던 대로 살아가 보겠습니다. '수기水記’에 실었던 서른한 편의 글과 그 후의 시간이 담긴 스물아홉 편의 글을 여기에 함께 묶습니다.
말하자면, 즉석떡볶이의 짜장과 고추장 혼합맛처럼 오 년이라는 시간의 혼합인 셈이지요.
어땠나요, 라고 묻는 건 정말이지 관둬 버리고 마지막으로 희망 사항이나 적어볼까 해요.
책장을 넘기면서 당신이, 미량의 다정함을 맛보고 허기를 달랠 수 있다면, 오늘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다면 저는 사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