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빅5 중 두 군데의 대학병원을 다녔다. 경력 단절 15년 후 임상에 복귀했다.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간호학과를 선택했기에 적성에 안 맞아서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만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이후 영어학을 전공해서 졸업장이 두 개가 되었다. 교육프로그램 개발자로 회사도 다니고 프리랜서도 하며 15년을 살았다. 좋아하는 일이었으나, 월급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서 병원으로 돌아갔다.
40대 중반에 임상을 다시 시작하니 뭘 배워도 기억이 잘 안 나고, 손과 발이 느렸다. 구박을 받고 눈치 보는 날들이 많았다. 처음 복귀했던 종합병원에는 적응을 하지 못 해 간호부장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그만 두었다.
의료관광 회사도 다니고, 교육 프로그램 회사도 다니고 하다가 또 같은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적응을 어느 정도 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지금까지 임상 간호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병원에 복귀했지만,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간호사의 처우와 문화를 접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환자수, 3교대로 인한 바이오리듬 파괴, 진짜 간호 업무 외의 잡일 수행, 5분 만에 먹어야 하는 식사, 태움과 뒷담화 등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간호계의 문제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
나라는 선진국이라면서 간호계는 왜 선진화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속상함과 의문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간호사로서의 화(火)와 한(恨) 그리고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이 간호사와 병원에 대해 궁금해 할만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앞으로도 간호와 관련된 활동을 계속 해 나갈 예정이다.
나는 간호사이다. 사람들은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른다. 지인 중에 간호사가 있는가? 병원에 가서 간호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둘 중 하나에 “그렇다.”라고 답을 했다면, 간호사가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백의의 전사들’이다.
대학 졸업 당시에는 나도 ‘백의의 천사’를 꿈꾸며 일을 시작했다. 대학 병원에서의 나의 현실은 어떠했을까?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간호하기’, ‘모든 사람을 인종, 성별, 나이, 국적, 피부색과 상관없이 대하기’, ‘다른 의료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소통하기’,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등 학교에서 배웠던 의료 선진국의 간호 기술과 마인드는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기본적인 간호 제공을 하기에도 빠듯했다. 하루 업무를 다 하고 남아서 병동 청소를 했다. 환자를 이송차에 싣고 달리는 이송요원이 되기도 했다. 밤번 근무를 마치고 눈도 못 뜨는 상태에서 병원 행사에 동원되었다. 대소변과 토물을 받아내야 했다. 격앙된 감정 속에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욕받이가 되었다. 의사의 지시가 없으면 뭐든 해서는 안 되는 ‘무뇌아’ 취급을 당했다.
참다못한 나는 어느 날, 사표를 냈다. “너는 피를 봐야 하는 팔자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한 채.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영어학을 전공하고, 교육 프로그램 개발자로서의 15년 경력을 쌓아갔다. 개발자로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험한 일을 안 하고 험한 말을 안 들었다. 매일 아픈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지시와 명령만이 있는 일방통행 의사소통이 아니라 협의를 통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15년의 시간이 흐른 2013년, 그렇게도 혐오했던 간호사를 다시 시작했다.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간 간호 현장은 여전했다. 기술들과 기기들은 더 발전했을지 몰라도 간호사에 대한 인식,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나이까지 많아진 나는, 어린 사람들 틈에서 일하는 것이 버거웠다. 적응하기도, 성질을 죽이기도 힘들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내야 했다.
대학병원 3년간의 경험과 15년의 경력 단절을 딛고 다시 간호사가 되어 웃고 울었던 나의 경험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병원 곳곳에서 열과 성의를 다해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동료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부록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나의 글을 읽고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아, 간호 현장에는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간접 경험을 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간호사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은 ‘내가 겪는 이 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네.’ 하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중간에 간호사 일을 쉬었지만 다시 해볼 만하겠어.’ 등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호사가 아닌 사람들은 왜 우리가 끊임없이 처우 개선을 외치고 더 많은 권리를 찾고자 애쓰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 이제 멋모르던 대학병원에서의 신규 시절, 그리고 15년이 흐른 후 다시 돌아간 병원에서의 이야기들을 펼쳐 보이도록 하겠다.
부족한 글이지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