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고 못생기고 똑똑하고 자존심 센 남자 사랑하다가
연애의 피 맛본 사람
사랑의 피 맛이 영 별로라
키 상관없이 잘생기고 무던하고 사랑 앞에 자존심 없는 남자 만나서
잔잔하게, 천천하게 사랑받고 행복한 여자
이상형과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기쁨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작은 작가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불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고민합니다. 출간한 책이 쌓일 때마다 고민은 짙어집니다.
가끔 인터뷰에서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무어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작가로 불리는 게 좋다고 고민 없이 말합니다. 삼십 대 후반의 여성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와이프, 딸, 사모님, 아주머니, 이모, 언니, 누나. 정도 있겠네요. 아, 삼십 대 초반의 어떤 동생은 누님이라고도 하더라구요. 기분은 참 묘하고 별로던데 누나를 높혀서 부른 거라니 할 말이 없더라구요.
제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주머니를 존경하지만 제가 원하는 호칭은 아니에요. 저에게 글은, 작가는 어렸을 때의 꿈을 포개어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성실한 노력을 인정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는 게 꿈을 포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한껏 행복해집니다.
요즘 소설 쓰듯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덕분에 첫 소설 앞에서 작아졌던 마음을 용기 내어 꺼내 봅니다. 평생 말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 말하고 싶으니까요. 이 소설을 한창 쓸 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힘든지 모르니까 시작했지, 알았으면 절대 안 썼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롤로그까지 쓰고 보니 이렇게 힘든지 알았더라도 꼭 썼을 것 같네요. 제가 좀 그래요.
원고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놓고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동생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부탁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일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꽤 부끄럽더라고요. 덕분에 새삼 부끄러워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죠.
“여기서 갑자기 버터가 왜 나와요?”
“배달 음식 시켜 먹어야죠.”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었습니다. 아마 저 혼자서 퇴고했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생각입니다. 새삼 읽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봤어요. 솔직히 저는 미세플라스틱이 싫어 배달 음식을 먹지 않고 버터 향을 참 좋아하거든요. 소설의 틈에 저의 취향이 들어있기에 또 다른 애정이 생겨납니다.
계절을 닮은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에서 어디까지가 감정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사랑할수록 많이 참고 많이 찌질해지던데요. 사랑의 크기는 재단해볼 수 없지만 찌질했던 순서는 나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사랑이 가장 찌질했을 거에요. 아마도.
소설을 마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추억하고 안녕히 내일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겨봅니다. 나의 첫사랑을, 그 시절을 그 계절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