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Sister). 나는 한동안 내 회고록의 타이틀을 이 ‘시스터’로 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알게 모르게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유일한 자매 재클린(재키) 언니였기 때문이다. 재키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위이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내 동생 같았다. 언니는 약간이긴 하지만 정신지체 증세가 있었다. 그래서 정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직업도 가질 수 없었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만큼 지체 장애자였다.
언니의 병은 내 삶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언젠가는 재키 언니를 내가 책임지고 돌봐 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토록 일에 매달리게 된 주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니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경제적인 책임감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내가 언니 때문에 속상해하고 언니 때문에 창피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은데 언니는 왜 저렇게 가진 게 없는지 하는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거의 80년 전 재키 언니가 태어나던 때만 해도 정신지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요즘은 ‘지능장애아’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이런 아이들이 가서 무엇이라도 배울 만한 워크숍도 없었고 이런 아이들이 가진 재능과 성실성을 어떻게든 끄집어내어 활용해 보겠다고 나서는 고용주도 없었다.
요즘 같았으면 언니도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단순하지만 생산적인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재키 언니의 삶은 나와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빼놓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부모님은 언니를 보호하셨다. 두 분은 가족 이외의 누구한테도 언니 이야기를 꺼내거나 언니의 몸 상태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말해 봐야 남들이 언니를 이해해 줄 리도 없고 기피하고 업신여기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재키 언니의 고독은 나의 고독감을 키우는 데도 한몫했다. 언니가 생일 파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 생일 파티도 없었고 언니가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도 걸스카우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우리 언니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나도 다른 집 아이들과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이들이 언니에 대해 쑥덕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톨이가 된 언니를 보면서 마음이 상하신 어머니는 내가 나이가 조금 들면서부터 여자 친구와 함께 놀러 나가거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언니를 같이 데리고 가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나는 언니를 사랑했다. 언니는 착하고 인정이 많았다. 그리고 어찌 됐든 내 언니였다. 언니가 미울 때도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 나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그리고 언니가 나의 삶에 드리운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언니가 미웠다. 물론 언니를 미워하는 감정이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언니를 미워했다는 말을 듣고 놀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같은 감정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나의 말에 함께 죄책감을 가질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형제자매 가운데 오래 앓아누워 있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이를 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근에 재키 언니가 나의 삶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책 한 권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심리요법사인 지니 세이퍼가 쓴 ‘정상인 : 힘들거나 병든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삶(The Normal One : Life with a Difficulty or Damaged Sibling)’이 바로 그 책이다. 저자도 아주 힘든 남동생과 함께 자란 사람이었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가 내 경우와 딱 들어맞았다. “너무 일찍 조숙한 아이. 남동생을 내가 돌보고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책임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 보지만 그랬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그래 봐야 재키 언니는 여전히 재키 언니였을 것이고 나는 똑같은 상황에 휘둘리며 지내 왔을 것이다.
성공, 성취, 자기 보호 등 내가 자신을 내몬 욕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이 언니에 대한 나의 감정에 닿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욕구를 남보다 뛰어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혹자는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또 혹자는 그걸 불안감이라고도 한다. 수줍음이라고 하는 것처럼 상투적이고 따분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전혀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살아오면서 긴 오디션을 한번 받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 오디션을 통해 나는 남보다 뛰어나려고 애썼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는 어릴 때 아주 예뻤다. 정신지체가 있었지만 외모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언니는 고운 머리칼, 고운 피부,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몸매는 나보다 더 예뻤다. 나는 검은색 머리에 얼굴은 창백한 편이었다. 말라깽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부모님은 나를 귀여운 말라깽이라는 뜻으로 ‘스키니말링키딩크’라고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곤 하셨다. 재키 언니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말을 하지 않을 때는 그랬다.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심한 말더듬이였다. 얼마나 심했던지 단어 한마디를 내뱉으려면 혀를 바깥으로 내밀며 온 힘을 들여야 했다. 부모님은 언니를 위해 좋다는 치료법은 다 써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번은 조지 6세 영국 왕의 언어장애를 낫게 했다는 사람한테 언니를 데려간 적도 있다. 그 사람도 언니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되었다. 언니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너무 딱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듣다 말고 놀리기부터 했다. 언니에 대해 제일 먼저 기억나는 일은 내가 세 살 때쯤이고 언니가 여섯 살이었을 때다. 이웃의 남자아이들이 언니가 말하는 것을 보고는 언니 스커트를 잡아당기며 놀려댔다. 우리 둘은 울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언니가 1985년에 난소암으로 죽을 때까지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 일을 걱정하고 도와주고 중요한 결정을 대신 내렸다. 그리고 나는 언니를 항상 사랑하지는 못했는데 언니는 언제나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언니는 나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두 가지 마음씨는 나중에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내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언니는 의기소침하고 짜증 내고 발끈하기도 잘했지만 그래도 나한테 화를 내거나 나를 시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내 딸아이 이름을 재클린(재키)이라고 지었다. 재키 언니가 내 아이를 자기 친딸처럼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무렵에는 나도 언니가 자기 아이를 가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듯 언니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지만 사랑이 원망보다 강했으며 언니가 안됐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텔레비전 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이들이 흔히 나한테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준비해 둔 것처럼 항상 “그건 패키지로 몽땅 가져가야 하는데”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그러면 모두 공손하게 웃지만 내가 말하는 의도는 알 리가 없다. 나도 굳이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 혼자만 간직해 왔다. 언니가 나의 삶을 이끌어온 중심적인 힘이기는 하지만 언니 역시 내가 이 책에서 밝히려고 하는 패키지의 일부였다.
이 패키지에는 언니 외에도 명석하고 빈틈없는 지휘자 역할을 하신 아버지, 사랑스럽지만 힘들게 사신 어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텔레비전에서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만난 멋지고 훌륭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 있다. 그렇다! 하지만 이 회고록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거기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나 자신의 이야기다.
프롤로그를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오래전 NBC의 ‘투데이쇼’에 매일 출연하던 60대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7번 애비뉴 57번 스트리트에 살았다. 내 아파트는 길 건너편에 카네기홀이 있는 아주 번잡한 거리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드는 대형 호텔도 여러 곳 있었다. 그 때문에 그 길모퉁이는 아주 매력적인 ‘밤의 여인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매일 새벽 5시면 나는 화장을 안 했기 때문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손에는 보통 쓰레기 봉지를 든 채였다. 그 ‘여인들’ 눈에는 내가 방금 거물 ‘고객’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계는 아니었고 바깥으로 나오면 젊은 여인들을 볼 수 있었고 그 가운데는 십대들도 있었다. “굿모닝”이라고 내가 아침인사를 건네면 그 여인들도 “굿모닝” 하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제복 차림의 운전기사가 모는 긴 검정 리무진에 올라 이른 새벽의 불빛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나의 그런 모습이 그 여인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 책도 여러분에게 그런 희망을 줄지 모른다.
자, 이제 그 패키지를 열어 보이려 한다. 처음부터 하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