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인기척으로 가닿았으면 좋겠다. 삐뚜름하게 비켜서서 정면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때로는 차갑게 등 돌린 뒷모습으로 일관하더라도, 기어코 나 여기 없다! 하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일삼더라도, 소설 속에 내가 꾹꾹 눌러쓴 인물들의 깊고 어두운 뒤척임이, 꽁꽁 싸맨 진심을 그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으려는 뾰족하고 단단한 웅크림이, 자꾸만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가까스로 삼켜내는 외롭고 미지근한 안간힘이, 실은 1인분이나 다름없는 여덟 편의 소설 속 8인분의 애씀이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지만 분명한 인기척으로 가닿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인기척으로 가닿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