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호는 송주(松洲). 이준(李儁)열사의 사위이다. 백관수(白寬洙)·장덕수(張德秀)·이원철(李源喆)·유억겸(柳億兼) 등과 교우하였으며 6·25 때 납북되었다.경사(經史)에 해박하며 신학문(新學文)에도 능통하였다. 1942년『율곡이이선생의 임오사대선언(壬午四大宣言)』을 출간하였고, 「율곡이이선생 대유모(大遺謨)」라는 논문을 1947년 1월『조선교육』 6월호에 발표하여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10여년간의 조선화폐연구에 잠심하여 『조선화폐고』를 출간하였으며, 『동아일보』에 초고를 연재발표하였다. 1947년 10월『율곡선생전』·『해아밀사(海牙密使)』를 저술하였고, 최호진(崔虎鎭)·전석담(全錫淡)·이북만(李北滿) 등과 『경제사』를 저술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유자후(柳子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