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묶인 소설들은 다 한 가족의 일상이야기이다. 큰 재미도 없고, 크게 의미도 없는 이 이야기들이 그러나 나에겐 어떤 힌트가 되었다. 오랫동안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사라지는 현재의 실감이 늘 아쉬웠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 몇 일, 몇 달을 보내는 동안 나의 현재는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예 소설작업을 하지 않으련다는 다짐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들을 쓰면서는 현재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너 해 전에 오래 살았던 지역을 떠나와 새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웅진백제의 도읍지였던 곳이다. 이곳에 온 뒤로 나는 종종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산으로 들로 엄마를 따라다니던 어린아이를 만나곤 한다. 흙냄새와 꽃향기와 새소리가 그 시절로 나를 냉큼 데려다주곤 한다.
그리고 햇살이 있다. 겨울이면 난로를 쬔 듯 따스하고 여름이면 살갗을 까맣게 태우는 이 햇살은 성인이 된 후 아주 잊고 있던 쨍쨍함이어서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어디 물가로 가서 이 햇살과 함께 첨벙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세계적인 전염병은 이 나라 이 지역까지 스며들어 한사코 우리들을 집의 테두리 안에 놓고 말았다. 재택이 다반사다 보니 집을 고치고 자신에게 쾌적하게 꾸미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제 집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때가 온 모양이다. 재산의 축적 도구가 아니고 여관방처럼 잠만 자는 곳도 아닌 삶의 가장 중요한 곳이란 생각을 많이들 하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집을 세내어 사는 사람은 마음대로 집을 고칠 수도 없다. 하물며 집이 아닌 거리에서 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도 많다.
셋집을 전전하던 우리 가족은 집 하나를 장만했다. 너무나 운이 좋았고 고마운 손길들이 있어 가능했다. 내 집이 있었으면 싶었지만 그걸 가지겠다고 아등바등해봤자 가능하지 않았기에 이 집은 그냥 선물 같기만 하다. 집이 생기니 더는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우선 좋았고 다음은 맘대로 집을 고치고 꾸밀 수 있는 게 또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마구 쫓기지 않았다. 천천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묶인 소설들은 그 선물 같은 집을 얻기까지 쓰러지지 않고 어떻게든 삶의 재미를 찾기 위해 협력하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메시지나 형상화는 한참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쓰며 나는 소설을 쓰면서도 현재를 잘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문학에 입문할 때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한국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에 기여하는 독특한 작가를 꿈꾸었으려나? 그때엔 그런 꿈도 조금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있는 자리와 만나는 사람들의 생생함만 구현해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 어려운 시절, 나의 주변이, 나의 주변의 또 주변들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며.
2021년 초여름
윤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