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태어나고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빙의』 『물에서 온 편지』 『호모 마스크스』 『꽃 진 자리』(4 · 3시선집)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이 있다. 제4회 오장환문학상과 제3회 신석정문학상을 받았다.
아직도 산문을 쓰는 일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물며 산문집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는 일은 나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끼적거린 대부분의 산문이 내 안에서 오롯이 움트고 자라나 한 편의 글이 되었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청탁을 받고 마감 시간에 쫓기듯 쓰게 된 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가 받은 글 청탁의 대부분은 내 유년의 기억이 아스라이 스며 있는 원도심 무근성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제주 4·3항쟁과 관련하여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거나 시를 쓰면서 미처 시라는 그릇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책을 내면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렇게 책으로 묶을 요량이었다면 애당초 고민은 더욱 깊었어야 했고 생각은 보다 넓었어야 했다. 원고를 정리하면서 뚜렷해진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 글을 쓸 수밖에 없을 때의 제주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제주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오히려 더 망가진 채 황량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정 해군기지가 그렇고, 성산 제2공항이 그렇고, 대정 송악산 개발이 그렇고, 선흘 동물테마파크가 그렇고….
무지막지하게 변모해가는 시대에 맞서 제주의 제주다움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생업을 뒤로한 채 동분서주 발품을 팔고 있는 많은 분들의 노고에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엉성한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바른 지적을 해준 삶창의 황규관 시인에게 다시 한 번 빚을 진 기분이다.
바람이 있다면 구순을 훌쩍 넘겨 병약해진 노모가 이 책을 받아 들고 활짝 웃음꽃 피웠으면 좋겠다.
2021년 이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