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인유《옥당한화(玉堂閑話)》의 찬자 왕인유(王仁裕, 880∼956)는 오대(五代)의 문인으로, 자는 덕련(德輦)이고 천수[天水,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톈수이시(天水市)]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글을 알지 못했고 사냥을 일삼다가 스물다섯 살에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해, 문장으로 진롱[秦?, 지금의 산시성(陝西省)·간쑤성 지역] 지역에 이름이 알려졌다. 당나라 말에 진주절도판관(秦州節度判官)이 되었으며, 진주가 전촉(前蜀)에 편입되자 중서사인(中書舍人)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그 후로 후당(後唐)에서는 진주절도판관·도관낭중(都官郞中)·한림학사를 지냈고, 후진(後晉)에서는 사봉좌사낭중(司封左司郞中)·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으며, 후한(後漢)에서는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호부상서(戶部尙書)·병부상서(兵部尙書)·태자소보(太子少保)를 지냈다. 후주(後周) 세종(世宗) 현덕(顯德) 3년(956)에 77세로 생을 마쳤고, 태자소사(太子少師)에 추증되었다.
대표작
모두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