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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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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나실인 : 고통의 시대로부터 누가 구원하는가?>

윤석준

유은교회 목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사 수업(M.Div)을 받고 교의학(Th.M)을 전공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모범으로 삼아 개혁교회 건설을 목표로 사역 중이다. 세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있는데, 첫째, 구속사적 성경 해석, 둘째, 신앙고백과 교리문답, 셋째, 개혁교회 생활 안내가 그것이다.

『한국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1, 2, 3』(이상 부흥과개혁사), 『목회를 위한 교회론』(송영목 공저, 도서출판향기), 『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퓨리탄리폼드북스), 『기독교 사용 설명서 10: 혼인』, 『견고한 확신: 도르트 신조 강해의 정석』, 『참된 신앙을 위한 세 하모니』(이상 세움북스)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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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참된 신앙을 위한 세 하모니 :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 2023년 8월  더보기

“신앙의 세 요지를 배워야 하는 이유” 오래전부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사도신경과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을 신앙의 기본으로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미처 우리말로 다 번역되기 전부터 신앙의 요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요지들을 먼저 번역해서 가르쳤습니다. 고대 교회에서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만 먼저 가르치다가 13세기에 와서 십계명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이전에는 항상 사도신경-주기도문-십계명 이 순서로 가르친 셈입니다. 이렇게 가르칠 때의 의미는 ‘실천’ 또는 ‘적용’의 순서를 따른 것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가 믿는 바 신앙의 요지를 정리하고, 이 정돈된 신앙의 요지는 ‘기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즉, 사도신경-주기도문의 연결은 ‘바르게 믿고-구한다’라는 순서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기에 ‘십계명’이 덧붙여집니다. 십계명은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알아,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신앙을 구현하는 것이 십계명의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믿고(사도신경)-기도하며(간구)-사는 것(십계명)의 연결이 있습니다. 고대 교회로부터 중세 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배들의 신앙에서 신앙의 세 요지의 순서의 특징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그 믿음을 터전으로 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 속에서 나타내는 것’의 연결이 잘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제아무리 기도(주기도문)하더라도 거기에 올바른 신앙의 베이스인 ‘무엇을 믿느냐’(사도신경)가 없다면 의미가 없고, 반면 제대로 믿는다고 하여도(사도신경) 삶에서 실제로 실천하지 않는다면(십계명)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그는 이 순서를 의도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루터는 대교리문답에서 이 신앙의 세 요지를 해설하는데, 순서는 십계명-사도신경-주기도문입니다. 십계명을 먼저 놓고 다음에 사도신경을 놓은 이유는 루터의 믿음의 여정, 그리고 이후 종교개혁이 가진 복음의 올바른 해설이 ‘율법-복음’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루터는 ‘십계명-사도신경’을 ‘구약-신약’ 혹은 ‘율법-복음’의 해설로 파악하고 순서를 이렇게 놓습니다. 루터가 순서를 이렇게 놓은 이유는 그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천년 간의 교회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보속’(補贖), 곧 ‘갚음’을 하기 위하여 사람의 행실에 치중했습니다. 하나님의 벌은 무섭고, 사람은 그에 대하여 돈이 되었건 고행이 되었건 그 죄에 대한 벌을 갚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시편과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복음의 참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가 깨달은 진짜 진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이 율법의 모든 성취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루터는 자기가 율법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고군분투했지만, 제아무리 자기 몸을 쳐서 괴롭혀도 결국에는 전혀 죄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께 의탁할 때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루터의 순서, 십계명-사도신경은 루터가 깨달은 복음의 이해가 녹아 있는 셈입니다. 그는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으나 사도신경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다면 그 율법은 우리를 옥죄어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순서를 이렇게 배치했고,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주기도문의 배치는, 이 일이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받더라도 그 복음의 은혜 속에 사는 것조차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었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으로부터 힘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율법과 복음의 뒤에 주기도문이 배치되어 그 복음의 은총 후의 ‘삶’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 그리스도를 통한 기도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 구원받은 은총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순서는 사도신경-십계명-주기도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순서는 이 교리문답의 첫 주일의 내용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주일은 “위로”에 대하여 1문답에서 물은 다음에, “우리가 이 위로 속에 살고 죽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2문답에서 묻습니다. 그리고 2문답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주일 2문 :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전체가 이 대답을 따라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비참’, 2부는 ‘구속’, 3부는 ‘감사’입니다. 1부는 우리 인간의 본질을 알려주고, 2부는 구원의 방법을 가르쳐주며, 3부는 구원받은 신자의 삶의 정체를 알려줍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2부 구속 파트에서 ‘사도신경’을, 3부 감사 파트에서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이어서 다룹니다. 이 구조는 교리문답이 세 신앙의 요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이해하는 사도신경은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사도신경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고 고백하면 이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다음에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이어집니다. 이 삶에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가’를 비춰줍니다. 그렇다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이해하는 십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입니다(이것을 통상 “율법의 셋째 용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때의 십계명은 ‘제약하 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이 연결됩니다. 주기도문이 시작되는 주일인 45주일은 기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45주일 116문답). 이 말은 기도에 ‘감사기도’만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기도의 내용’, 곧 ‘무엇을 기도할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도 스스로의 본질적 성격’이 무엇인지를 말한 것입니다. 즉, 기도란 바로 ‘감사’인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감사의 삶’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행위’이고,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만 가능합니다. 이렇게 교회 역사 속에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은 저마다의 강조점에 따라서 순서를 달리하여 교회 안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차이’보다, 이 신앙의 세 요지의 ‘필수불가결함’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들이며, 성경 전체를 한꺼번에 읽고 배울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외국 개혁교회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가면 교리문답을 배웁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학교 교과과정에서 성경이나 교리를 배우는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 또한 이 신앙의 세 요지를 잘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것은 생명이 걸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배움의 시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이 생명의 원리’를 올바르게 잘 가르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사명을 직시하고, 온전히 생명을 드려 이 ‘신앙의 세 요지’를 가르치 는데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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