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지르면 수습할 힘이 생긴다’라는 믿음으로 지난 25년간 열 번의 이직과 열한 번의 취업에 성공한 글로벌 직장인. 이름 없는 조력자의 삶을 살다가 삼성전자 근무 시절 디자인한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의 성공으로 직장 생활 20년 만에 업계의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현재는 구글 본사의 핵심 부서인 검색과 인공 지능 팀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 실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것을 계기로 미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화여대 미대에 진학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컴퓨터 강사로 일했는데, 문제는 그녀의 컴퓨터 실력이 수강생들과 다를 바 없는 초보자였다는 것. 하루 공부해서 하루 가르치는 일을 반복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의외로 수강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저지르면 수습할 힘이 생긴다는 믿음은 이때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지틀조선일보와 CJ에서 웹디자이너로 3년간 일하다가 미국 대학원에 합격한 남편을 따라 아무 준비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Excuse me’, ‘Thank you’, ‘I’m sorry……’ 정도.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상태로 시작한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취업을 하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는데 영어 성적이 한참 모자랐다. 대학원에 원서를 넣은 후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가장 가고 싶던 디자인 명문 대학원 일리노이 공대 디자인 스쿨에 합격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취업을 해야 했으나 면접에서 말을 제대로 못 해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어렵게 블랙웰이라는 컨설팅 회사에 합격해 2년 동안 대형 보험 회사에 파견되어 일했지만 본인과 맞는 일이 아니었다. 더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직을 결심하고 대학원 시절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는 모토로라에 다시 도전해 합격했다. 모토로라에서 3년간 일하며 레이저 폰의 성공을 함께했고, 이후 퀄컴에 합류해 앱 개발 플랫폼과 증강 현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했다. 스마트워치는 해외 언론으로부터 ‘애플보다 우아한 인터페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웨어러블 산업을 이끌 글로벌 18인의 여성 리더’와 웨어러블 게임 체인저 50선’에 뽑혔고, 이어 ‘IDEA 디자인 브론즈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2018년 미국 실리콘 밸리의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직장 생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 속에서 열등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최악의 슬럼프를 겪은 것.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날이 1년 동안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자신감을 회복하고 팀 직원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는 제목의 글을 전체 메일로 보냈다. 업무 능력이나 평가가 사람의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솔직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이 글은 회사 여러 그룹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도 개구리라며 커밍아웃을 했다. 다들 똑똑하고 잘나 보이던 그들도 남몰래 자신과 열심히 싸우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구글에 순조롭게 적응해 2020년에는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강연과 SNS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지난 25년 동안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나누었다. 특히 서른 살 언저리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녀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어 왔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과 위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서른 살들이 그녀의 말에 힘을 얻는 것처럼 그녀 역시 밝고 희망찬 그들의 반응을 통해 큰 힘을 얻고 있다. 1등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25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그녀는 오늘도 영어 울렁증과 싸우며 앞으로 25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