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숙
열 살 무렵부터 안경을 썼다. 더 어렸을 때부터 근시였을 것이다.
가까이 보아야 알아볼 수 있는 건 글씨만이 아니라는 걸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해했다. 주머니가 많은 옷이 좋다. 몇 개가 있는지
모르는 주머니들은 세탁기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살아온 날의 기록을
꺼내놓는다. 글은 시간을 써 내려가는 일, 수십 년 살고 나니 시간을 들
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나는 바람의 탄식을 쏟은 뒤 시간의 주머니에서
주름진 삶의 영수증을 꺼내 안경을 벗고 더 가까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