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文化柳氏)로, 자는 자정(子淨), 호는 백천(百泉)이다. 이괄의 난 때 족손(族孫) 백석(白石) 류
집(柳楫)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정묘호란 때에는 조카 류응량과 함께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켰
다. 병자호란 때 화순에서 거의(擧義)하여 맹주(盟主)로서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으나, 화친
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환산정(環山亭)을 짓고 절속(絶俗)하였다. 서암(瑞巖) 산중에 우거
하며 샘 옆에 별장을 지어 백천재(百泉齋)라 하고, 성리학에 전심하면서 지봉 이수광, 우복 정경세
등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사귀고 이기(理氣)로 문답하여 「사서설(四書說)」을 남겼다. 90세가 넘은 부모를 극진히 모셔 백천효자(百泉孝子)로도 이름이 높아 언동사(彦洞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