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 신부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 역사소설, 과학소설, 현대소설, 희곡, 시, 동화, 회고록, 신학 논문 등 장르를 넘나들며 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조지 오웰, H.G 웰스, J.R.R 톨킨, C. S. 루이스, G. K. 체스터튼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1871년 에드워드 화이트 벤슨과 메리 시지윅의 막내아들로 런던 외곽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이던 해, 그의 아버지는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캔터베리 대주교 자리에 올랐다. 벤슨은 이튼 칼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종교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1895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악화된 벤슨은 회복을 위해 중서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유럽에 체류하며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벤슨은 성공회의 교리에 의문을 품고 방황을 거듭한 끝에 1903년 로마가톨릭교로 개종한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자 촉망 받는 성공회 신부였던 그의 개종은 당대 종교계는 물론 유럽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 수많은 유명 지식인들이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당시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이다.
1904년 로마가톨릭교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케임브리지로 부임해 사목 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11년 비오 10세로부터 교황 전속 사제로 임명되면서 큰 신부님(몬시뇰: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 칭호를 받았다.
그가 제시한 이론이나 사상만큼이나 치열하게 살면서 열정적으로 창작에 매진했던 벤슨은 지속적인 과로로 인해 폐렴을 동반한 협심증과 신경계 손상으로 1914년 10월 19일 샐퍼드에서 43세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 세계 정세와 사회 변화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어 다시금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100년의 시간 동안 바래지 않는 그의 혜안과 통찰은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하고 있으며 두 명의 교황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