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30여년 만에 동네를 벗어났다. 국도를 타고 가다 원주 지나 치악산고개를 넘어봤다. 영월, 태백, 고한, 만항재. 검은등뻐꾸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통리 협곡을 울리고 가는 새소리처럼 아프게, 야생화도 누렁소도 날개 달린 빗방울도 가슴에 들어왔다. 그렇게 새로운 기운이 들어왔다.
한밤에 본 천전리, 대곡리 암각화, 찬 공기 맞으며 올라간 태백산, 아침 햇살따라 내려오던 백두대간의 산줄기들, 눈에 푹푹 빠지던 겨울 산늪, 내가 가장 원초적일 때 그 기운은 언제나 나를 깊이 감싸 안았다. 그 기운에 싸여 바라보던 눈발은, 새들은, 사람들은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 그리고 나는 어찌 그리 어둡던지. 이제 나를 하나로 줄이고 싶다. 그러나 하나도 너무 많다면? 그때에도 시를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