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인간이 될 수 없었던 파리의 철학도. 20세기 끝자락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명품 인간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외침에서 알 수 없는 수상함을 감지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프랑스로 떠났다. 인간의 권리를 쟁취해 낸 역사가 있는 곳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면 ‘나는 명품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2년 과정의 어학 코스를 밟고 입학한 파리 제1대학 소르본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2020년 가을부터는 동대학원 철학과 미술사학부에서 미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학부 수업에서는 ‘질문에 질문으로 되묻기’를 배웠다. 이미 상대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고 문제의 근본을 되물으며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방식이었다. 낯선 공부였지만 한국에서 ‘눈치도 없고 말도 안 듣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왔던 덕분에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지난 3년의 여정에서는 ‘명품 인간이 왜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얻었다. 더 많은 사람과 ‘철학하기’의 유익을 향유하며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배우고 쓰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