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문학박사(러시아 문학)
경북대학교 교수(1992. 3~현재)
대경민교협 집행위원장(2004. 6~2006. 6)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부학장(2005. 3~2006. 2)
민예총 대구지부 영화연구소장(2007. 3~현재)
경북대학교 전교교수회 부의장(2008. 3~2010. 2)
민교협 공동의장 겸 대경민교협 의장(2012. 6~2014. 6)
경북대학교 인문대학장(2012. 9~2014. 8)
복현 콜로키움 좌장(2015. 3~2017. 2)
전남대 교환교수(2019. 3~2020. 2)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시인의 저녁> 진행자(2020.10~)
● 저서: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대학생으로 살아남기>, <기생충이 없었다면 섹스도 없었다>,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1, 2, 3, 4, 5, 6, 7, 8>,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련 초기 보드빌 연구>, <파안재에서>, <비가 오는데 개미는 왜 우산을 안 쓸까>,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이상 저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찾아서>,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 읽기>, <생활 인문학 1, 2>(이상 공저)
● 역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광장의 왕>, <마야코프스키 희곡전집>, <체호프 희곡전집>, <귀여운 여인>
● 관심영역: 인문학의 확대와 보급, 민주사회 건설과 부의 공평한 분배,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나와 우주의 합일과 자유로운 공존을 위한 내적인 성찰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일은 ‘여전히’ 행복한 노릇이다. ‘여전히’를 강조함은 오래전 기억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다니면서 학교 신문에 연극평을 투고하여 실린 적이 있었다. 뭐 대단한 글은 아니었지만, 원고료까지 받게 되니 기분이 썩 좋았던 게다. 그 후로 러시아 단편소설과 논문을 번역하여, 글이 활자로 만들어져 책으로 나왔을 때 참 기뻤더랬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재미로 사나보다, 생각했던 아스라한 옛날이야기.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 3일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번역했던 때는 또 어떤가?! 야경꾼으로 베를린의 밤을 지키면서 독수리 타법으로 ‘286 컴퓨터’ 도움을 받으며 한 줄 한 줄 끙끙대며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의 놀라운 이야기를 옮겼던 시절. 거의 6개월 동안 하루 18시간 강행군해가며 장편소설 번역을 마치고 난 뒤의 개운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유쾌하고 마음 따뜻하게 자리한 출간의 추억은 2005년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가 세상과 만난 일이다. 당시 경북대 인문대학 부학장 노릇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출간을 축하하려고 <오마이뉴스> 기자가 학교를 찾아왔다. 2003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영화평을 투고했던 터라, 그동안 모은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것이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첫 권이었다. 그것이 이번 책으로 여덟 번째 출간을 맞게 되었다.
나도 그랬지만 주변에서도 뭐, 곧 그만두겠지 생각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의 근기(根氣)가 의외로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2-3년을 주기로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를 출간하였으니 말이다. 필시 누가 강제로 시킨 일이라면 분명히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즐겁고 행복해서 오랜 세월 용케 버텨온 것이 아닌가 한다. 2,500년 전 공자가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논어』, '옹야편')라 하지 않았던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가, 궁금해진다. 영화인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인가?! 영화는 2차원 평면에 구현하는 3차원의 세계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적용되어 영화의 시공간을 확장할 것인지 궁금하지만 아직은 그런 형편이다. 기술과 자본이 예술과 결합하여 신기원을 이룩한 최고의 종합예술 영화. 수많은 관객이 극장이 아니라, 영화관에 몰리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다. (연극과 오페라, 발레는 극장에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다!)
일찍부터 문학과 연극에 경도된 나에게 영화는 다소 늦게, 그것도 뜨뜻미지근하게 다가온 예술 양식이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벽두의 일이다, 20년 남짓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전에 나를 사로잡은 몇 편의 영화가 물론 있다. <아마데우스>, <플래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동사서독>, <비포 더 레인>, <데드 맨 워킹> 같은 영화를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21세기 들어서 나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났다.
대구의 문화단체 ‘예술마당 솔’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영화 보기 모임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부터다.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 있게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버릇은 그때 길러진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논의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반드시 제시해야 할 핵심적인 논점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대개는 영화를 논하기 전에 장문의 글을 써서 모임방 홈페이지에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의 영화 보기 모임은 ‘예술마당 솔’과 이런저런 이유로 작별을 고한다. 그러다가 2007년에 ‘가락 스튜디오’ 극장장이 영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을 해왔기로 흔쾌하게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고, 나도 2019년 옹근 한 해를 전남대 교환교수로 다녀왔기에 모임에 소홀한 면도 많았다. 그러다가 불거진 코로나19 사태. 그 때문에 ‘가락’에서 영화를 보는 모임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그러던 차에 대구 문화방송국(엠비시)에서 시사와 인문학을 겸한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해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해왔다. ‘시사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이라는 의미를 가진 ‘시인의 저녁’ 프로그램이 2020년 10월 5일 출범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일에 걸쳐 매일 45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인의 저녁’. 그 첫날인 월요일 인문학 시간에 어김없이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다시 부지런하게 영화를 찾아서 살펴보기 시작한 게다.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자리매김한 코로나19 덕분에 영화관 가는 일이 즐거워진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인지 알고 싶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예의 없는 행동으로 빈정 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요즘 영화관에는 관객이 뜸하다. 자연히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언감생심 천만번 반가운 일이다. 어느 때는 세 시간을 혼자서 영화관 전체를 독점하는 일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코로나19의 선물 아니고 무엇이랴!
그나저나 이제는 코로나19와 작별할 때도 되었다. 반면에 역병(疫病)의 창궐로 인해 다채로운 영화를 보게 되었음은 또 다른 축복이다. 영화 제작사나 수입사 그리고 단역 배우들의 심각한 재정난은 실로 유감이지만, 영화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전염병 덕분에 아주 다양한 영화를 보게 되어 흐뭇한 마음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 오지 못할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영화도 많이 보고, 영화평도 쓰게 되는 이중의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 셈이다.
앞으로 남은 욕심이 있다면,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연작을 10권까지 출간하는 일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기에 기왕 착수한 일을 10권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2000년부터 적어도 25년 가까운 세월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가운데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관한 글들이 10권으로 묶이게 되리라. 그것은 최소한 20년 정도의 영화 관련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기록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영화에 담긴 매 시기의 독특한 색깔과 의미와 향기는 더욱 뜻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면서 견뎠을까, 하는 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작동하는 영화와 영화평. 이제 그 여덟 번째 서책 출간에 즈음하여 독자 제현의 관심과 질책을 기대한다. 언제나 퇴고를 마치면 다가오는 일말의 아쉬움과 부담감은 어쩔 도리 없는 천석고황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과 평안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