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험의 문제와 답안지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다는 말에 대한 한 선배가 “과거 시험은 시 쓰고 경전 외우는 게 다 아니야?”라는 질문을 했었다.
나는 이 대답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질문이 과거科擧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 책문과 대책을 주제를 잡게 된 계기도 이와 비슷했다. 학부 수업 발표 주제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방영한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옷 형태로 만든 중국의 과거 시험 커닝페이퍼를 보고, “저런 부정행위를 해서까지 합격하고 싶은 과거 시험이란 대체 무엇인가?”에서 시작한 의문이 “나라를 운영할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에서는 어떤 문제가 출제될까?”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시험 문제 중 당대의 시무時務를 다룬 책문策問과 이에 답한 대책對策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과거 시험은 어떨지 의문이 들어서 조선의 책문과 대책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막연한 호기심과 학구열로 대학원에 들어온 내게 지도교수님께서 과거 제도와 사상사를 연결하여 공부하라는 방향을 제시해주셨다. 그런 가르침에 따라 공부를 하다 보니 조선 전기 주자성리학.조선 후기 조선성리학의 사상적 발전과 그에 따른 문물제도의 변화가 과거 책문과 대책에 드러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도교수이신 지두환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경세관經世觀 중 인재관人才觀.군신관君臣觀.경제관經濟觀을 다룬 책문과 대책을 연결시켜 분석하는 것을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가르침의 길잡이가 되어 주신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을 맡아 가르침을 주신 김재홍 교수님?한기범 교수님?정재훈 교수님?김보정 교수님의 지도로 부족하지만 박사논문을 낼 수 있었다.
논문은 인재관?군신관?경제관의 변화상이 주자성리학-성리학의 심학화心學化-조선성리학의 변화에 따라 과거科擧 책문과 대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책문과 대책에 드러난 변화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 주자성리학에 도입되어 문물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는 고려 말의 폐습을 개혁하고 주자성리학에 입각한 이상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고, 『대학연의』가 경세관 성립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의 인재관은 우선 고려 말의 인재 선발 제도를 개혁하고 이상적인 인재상으로 중국 고대 요순삼대堯舜三代 시절 현인賢人을 추구하였다. 군신관은 윤대?대간 같은 제도를 통해 신하가 임금을 바르게 인도하는 군신관계가 점차 사림 재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으며, 인재관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대 요순삼대의 성군과 현신을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여겼다. 경제관은 정전제井田制 10분의 1세 체제를 수용하여 고려 말 전시과를 혁파하고 세종대에 정전제 중 공법貢法을 시행하였다. 세종 9년에는 직접적으로 공법을 주제로 한 책문이 나오기도 하였다. 세종대 공법 체제는 세조대에 잠시 어그러졌으나 성종대에 다시 보완되어 중종대에는 완전히 정착되었다.
중종대부터 『대학연의』의 이해가 심화되고 성리학의 심학화心學化가 진행되면서 심학화된 성리학에 의한 경세관이 다시 정립되었다.
이 시기의 인재관은 임금 스스로 마음공부를 하여 훌륭한 인재를 알아보고 그 인재에게 정사를 맡기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으며, 한당漢唐 이후의 인재들이 재평가 되어 특히 송대 염락제현濂洛諸賢이 중국 고대 요순삼대 시기 인재들 이후로 가장 이상적인 인재로 평가되었다. 군신관은 산림山林 재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이상적인 군신관계 예시의 범위도 넓어져 촉한의 유비와 제갈량이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평가되었다. 경제관에서는 공납貢納을 대동법大同法으로 개혁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공안개정은 대동법 시행을 두고 가장 중요하게 논해진 주제인데, 실제로 책문의 주제로 여러 번 출제되었다. 이후 현종대에 이르러 대동법이 완전히 정착된 후 숙종대에는 대동미大同米 탕감을 논할 수준에 이르렀다.
숙종 20년 갑술환국 이후 영조~정조대에는 조선성리학에 입각하여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조선 중화주의 기반의 고유문화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 사상을 주도하는 것은 『성학집요』였고, 인재관.군신관.경제관도 조선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숙종대부터 과거 폐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영조~정조대에는 대대적으로 과거제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이후에는 과거제 중심의 인재 선발에서 벗어나 천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였다. 이상적인 인재상도 중국사에서는 고대부터 명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의 황희.허조.동방 오현東方五賢.서경덕.조식.이이까지 확정되었다. 군신관은 『성학집요』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군사君師로 확립되어 임금이 스승이 되어 신하들을 가르치고 정책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구체적인 군신관계의 예시를 들기 보다는 인仁이나 경敬, 부부관계처럼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군신관계를 규정하고자 하였다. 경제관은 양역良役 논의를 통해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여 공법?대동법과 함께 조용조 10분의 1체제를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정조대에는 조용조 10분의 1체제의 완성에 따른 부족한 세금을 채우기 위한 잡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책은 박사논문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수정한 것이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을 느끼고 매우 부끄럽지만, 앞으로의 학문의 길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출간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