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브리태니커 편집실에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타네하시 코츠의 『세상과 나 사이』,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리커버링』, 에마 스토넥스의 『등대지기들』, M. 리오나 고댕의 『거기 눈을 심어라』, 신시아 오직의 『숄』 등이 있다.
정말이지, 첨단을 뽐내는 이미지에서 빠지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이 본질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선원근법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우주선 마젤란 호가 찍은 금성의 대기사진을 보면서 터너의 낭만주의적 관점을 생각한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해부학 도해와 각종 분자모델에도 저마다 무슨 미술 양식처럼 시대적인 특징이 있다니 솔깃하지 않은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패턴 인식에 대한 ‘구조적 직관’을 형성해왔다고? 그렇다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서 쉽게 토끼, 호랑이, 고래 같은 동물 모양을 발견하는 것이 단지 어린 마음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며, 벽지 위에서 의미 없이 반복되는 넝쿨무늬 속에서 소름끼치게 웃는 마녀나 뿔 달린 괴물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단지 심리상태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직관 속에 포함되지 않아서, 우리가 감각할 수단이 없어서, 우리 종이 진화시켜온 눈의 특성과 한계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지만 ‘보지’ 못하는 수많은 차원들은 또 어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