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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시카 호쿠사이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로 세계 미술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1760년 에도 혼죠(현재 도쿄 스미다구) 근교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막부에 거울을 납품하던 나카지마 가문에 입양되었지만 14세 무렵 집을 나와 책 대여점에서 일하며 삽화에 흥미를 느껴 목판 조각을 배웠습니다. 19세가 된 호쿠사이는 야쿠샤에(가부키 배우 그림)로 시대를 풍미한 우키요에 화가 ‘가쓰카와 슌쇼’의 문하로 들어가 ‘가쓰카와 슌로’라는 필명을 하사받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35세 때 문파에서 쫓겨나 ‘호쿠사이 소리’라는 필명으로 기존 틀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도 ‘도키마사’ ‘가코’ ‘다이토’ ‘만지’ ‘가쿄진’ ‘가쿄로진’ 등 여러 차례 필명을 바꾸었으며 후대에 널리 알려진 ‘가쓰시카 호쿠사이’라는 이름 역시 40대 때 잠시 사용한 필명입니다. 어떤 그림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화법으로 판화, 육필화, 삽화, 우키요에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72세라는 노령으로 필생의 대작 <부악삽십육경>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후지산을 주제로 한 연작 <부악삼십육경>은 후지산 순례 유행과 맞물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가부키 광고를 위한 인물화 위주의 우키요에를 풍경화 위주의 우키요에로 변화시키는 등 미술계의 판도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중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아래>와 <붉은 후지산> 등의 걸작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고 아직까지 일본 미술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는커녕 발전에 발전을 멈추지 않던 호쿠사이는 예술적 감각과 기술이 정점에 도달한 75세 때 총 3권으로 이루어진 <부악백경>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부악삼십육경>의 후속으로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아래> <붉은 후지산>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후지산이 있는 풍경 속에 지역의 풍습과 풍물까지 녹여 내어 후지산 순례자와 도카이도를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여행안내서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부악백경> 말미에 실린 후기 또한 일본 미술사에 남을 명언으로, 그림에 대한 호쿠사이의 식지 않는 열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열정에 걸맞게 무엇이든 일필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묘사력과 엄청난 속필을 자랑했던 그는 삼라만상에서 인물화, 삽화, 춘화, 부채, 병풍에 이르기까지 평생 총 3만여 점의 목판화와 육필화를 남겼습니다. 그러던 1849년 “하늘이 10년, 아니 5년만 더 허락한다면 진정한 그림쟁이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평생 그림에 미쳐 산 늙은이는 가족이 곁을 지키는 가운데 아사쿠사의 센소지 경내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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