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렙돈리더(NGO 대표)
『버킷프로젝트』, 『미라클팬슬』, 『대학 가게? 그냥 사장 해!』,
『호기심 공부법』, 『10대, 교과서 대신 1000권의 책을 읽어
라』, 『공부 열심히 한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손자의 틀을 깨
고 병법의 판을 짜라』, 『뻔한 식당 말고 Fun한 식당』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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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및 독서 모임, 단체 등 500회 이상 강연 및 수업
들어가는 글
“학교에서 정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게 어렵지?”
사촌동생은 부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봄 방학이 없는 학교라서 일반학교보다 먼저 개학을 맞이했었다. 그런데 초기진압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치면서 사촌동생이 다니는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기로 했다.
사촌동생의 집은 대구다. 교장선생님께서 대구에 사는 학생들은 절대로 대구로 돌아가지 말 것을 당부하셨고, 대구 말고 갈 곳이 없는 학생은 학교에 남아 있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촌동생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사촌동생은 대안학교에 다니기 전만 해도 집안의 골칫거리였다.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 가면 잠만 잤고, 공부에 전혀 흥미를 갖지 못했다. ‘자퇴를 시켜야 되나?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던 숙모는 우리 어머니께 연락했고, 우리 어머니의 소개로 부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사촌동생은 부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수업시간에 가장 집중 잘하는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다. 학교 프로그램 중 일 년에 3번 대만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재영이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대만의 매력에 빠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자와 대만어를 공부하면서 대만에 있는 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재영이의 달라진 모습으로 인해 숙모는 너무 기뻐하셨고, 우리 어머니께 너무 감사하다며 전화를 자주 하셨다.
대만을 다녀오고 난 후에 재영이는 대구 집으로 가지 않고 잠깐 우리 집에 있다가 다시 대안학교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재영이와 처음으로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10시부터 시작된 대화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는데 “대만대학교를 왜 가려고 하는 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대만 문화도 재밌고, 그냥 대만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어.”라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난 “내가 너였다면 난 절대 대만에 있는 대학교를 가지 않겠어. 잠깐 대만에 다녀와 놓고 ‘대만에 흥미가 생겼다.’ ‘대만이 너무 좋다.’라고 말하는 건 오버인 것 같아. 내가 너였다면 대안학교도 안 다니겠지만 대안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다면 방학 때라도 혼자 배낭 하나 메고 대만을 여행할 것 같아. 직접 돌아다니면서 대만의 문화도 배우고 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경험하고, 네가 공부한 언어도 어느 정도 수준인지 현지인과 대화하면서 평가하고 말이야.”라는 말을 해줬다.
다들 재영이의 변화된 모습만 보고 “공부 열심히 한다며? 대단하네.”라고 말해줬지 진짜 그의 속내를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말에 재영이가 흥미를 보여서 조금 더 질문을 던졌다. “네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아직 뭐하고 싶은지 모르겠어.”라고 재영이는 답했다. 난 너무 답답했다.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그냥 학교 공부만 조금 열심히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네가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대만대학교에 가서 뭐 할 건데? 현재 우리나라에 대만 버블 티가 유행하잖아? 누군가가 대만에서 먹어보고 우리나라에 가지고 왔을 거 아냐? 그런데 버블 티 말고 대만에 더 맛있는 음식이나 디저트가 있을 수 있잖아?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 더더욱 배낭 하나 메고 대만을 여행하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음식들을 먹어보고 그 음식들을 한국에 갖고 와서 사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말해줬다. 재영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해졌고,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재영이는 내가 쓴 책 몇 권을 가지고 대안학교로 돌아갔다.
난 재영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 재영이를 만나게 되었다. 분명 몇 개월 전에는 모든 친척들이 칭찬하던 사촌동생이었는데, 삼촌은 재영이가 집에만 돌아오면 그대로라며 속상해하셨다. ‘시간이 필요한데 조금만 기다려주시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저 생각은 속으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 온 첫 날 재영이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어 방으로 들어갔는데 재영이는 자고 있었다. ‘공부한다고 요즘 많이 피곤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푹 잘 수 있도록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줬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재영이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저녁 8시 쯤 어쩔 수 없이 재영이를 깨웠다. “피곤하지? 저녁이라도 먹고 쉬어.” 재영이는 배고팠다며 얼른 일어났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침 6시까지 스마트폰을 한다고 밤을 새웠던 것이다. 그리고 6시에 잠들어서 저녁 8시까지 푹 잔 것이다.
재영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받아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다음 날에도 깨어 있을 때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봤다.
‘이래서 그대로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재영이를 데리고 해안가로 산책 하러 나갔고 거기서 이런 말을 해줬다. “학교에서 정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게 어렵지? 난 이게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 해.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있고, 네가 스스로 느끼기에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하면 학교가 시키지 않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하겠지. 그런데 네가 꿈이 없으니 뭘 해야 될지 모를 거야. 그런데 그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생, 청년들이 그렇게 살아. 네 꿈을 찾고 네 꿈을 공부하고 싶지 않니? 그게 필요하다면 형이 도와줄게.”
재영이는 “OK”를 했고 그렇게 우리는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함께 찾기 시작했다.
2020년 꽃피는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