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일본군의 포로 감시원 모집에 응모하여, 1942년 9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군 군무원으로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연합국 포로 감시 업무에 종사했다. 1947년 3월 20일 전범으로 체포되어 오스트레일리아 관할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7일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중형을 살았지만, 일본 정부는 ‘외국인’으로 구분해 원호와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1955년 처지가 같은 한국·조선인 전 BC급 전범자와 함께 ‘동진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동진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