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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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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민주주의 고전 산책>

최정욱

현재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치학의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고 오랜 기간 한국 정치, 동남아 정치경제, 인도 정치와 사회, 그리고 서양과 한국 민주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는 정치학자입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장기 개인연구 과제로 서양 민주주의 개념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서 중에는 Governments and Markets in East Asia: The Politics of Economic Crises(London: Routledge, 2006 and 2014)와 2014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수상한 Votes, Party Systems, and Democracy in Asia(New York: Routledge, 2012 and 2016), 201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동시에 교육부 학술지원사업 우수성과 50선으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표창을 수상한 『인도의 사회적 취약층과 우대정책: 기타후진계층(OBC)의 공직, 교육 및 정치부문 할당정책』(서울: 글로벌콘텐츠, 2017), 202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서양 민주 개념 통사: 고대편』(서울: 박영사, 2021)과 더불어 2권의 공저서인 『1948년 헌법을 만들다』(서울: 포럼, 2023)와 『인도대전환의 실체와 도전: 통합과 도전』(서울: 씨아이알, 202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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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서양 민주 개념 통사 : 고대편> - 2021년 9월  더보기

서문 --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직을 둔 지 3년차인 2007년 가을학기부터 학부에 <정치학고전원서강독>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서양정치사상사에서 민주주의와 관련된 고전 텍스트를 발췌해 강의를 해 왔으니 벌써 이 저서의 주제를 두고서 나름대로 씨름을 한 세월이 14년이다. 돌이켜보면 강의를 한 세월보다 앞으로 강단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세월이 더 짧은 나이가 되었다. 요즘 이렇게 정년이 한 자릿수밖에 남지 않게 되면서 내 발자취를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성을 몹시 느낀다. 학문에 종착역은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자신의 발자취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80년대 중반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들어갔으니 정치학과 인연을 맺은 지가 어언 35년이고 학부 1학년부터 개인적으로 몇몇 선생님들을 찾아서 추천도서를 받아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공부의 한 축이 정치학 고전 읽기였다. 정치학도로서 출발도 정치학 고전 읽기로 시작했으니 마무리 역시 뭔가 고전과 관련한 작업이 좋다고 보았다. 긴 인생 여정에 걸쳐서 오랜 기간 해온 일이니 마무리 역시 그렇게 간단히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한국연구재단에 장기 연구과제 지원 사업이 신설되었다. 나는 바로 <서양사상사에서 ‘democracy’ 개념의 원론적 재고찰: 고대 그리스 헤로도토스부터 현대비교이론가인 슘페터까지>라는 주제를 달고 7년 장기연구 지원을 신청했고 운 좋게 선정되어 이제 3년차, 1단계 연구를 마무리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비교정치나 인도와 동남아연구만이 아니라 사상 관련 주제도 다루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발표해온 논문은 차치하고라도 외국출판사를 통해서 2권(Governments and Markets in East Asia: The Politics of Economics Crises, Routledge, 2006; Votes, Party Systems, and Democracy in Asia, Routledge, 2012), 국내출판사를 통해 1권(??인도의 사회적 취약층과 우대정책: 기타후진계층(OBC)의 공직, 교육 및 정치부문 할당정책??, 글로벌콘텐츠, 2017) 총 3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사상이라는 것이 정치학의 기본이고 서울대 석사과정 전공이 사상이었으며,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박사과정의 한 분야도 사상이었음을 감안하면 내가 사상을 다시 다루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정년이 머지않은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학계를 돌아보면 정치사상을 해서 먹고 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사상이 원래 단편적인 논문보다는 긴 호흡으로 저서를 통해 승부하는 작업이라 짧은 논문으로 채용과 승진을 평가하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사상전공자는 생존경쟁에서 도태되기 쉽다. 학문이 장기적으로 발달하려면 이렇게 논문으로 얽매여 있는 사슬을 풀고 누군가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 나처럼 이미 정년을 보장받고 논문 한두 편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긴 안목으로 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고참 교수들이라 생각한다. 긴 연구과정을 통해 원래 저서 1권과 편역서 1권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 지원이 1단계 3년과, 2단계 4년으로 나뉘어 예산이 집행되다 보니 출간계획도 여기에 맞춰 1권의 저서가 2권으로 나뉘어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 민주 개념 통사의 고대편이 이번에 나오고 나중에 서양 민주 개념 통사의 근대편이 나오게 될 예정이다. 편역서는 정치사상에서 민주 개념 관련 주요 사상가들의 원저작들에서 관련된 텍스트 부분의 영문과 그에 대한 번역문 및 사상가 인물소개를 병치해 출간하게 될 것이다. 이 3권의 책은 전공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능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집필된다. 특히 편역서는 고등학생들에게도 권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집필될 예정이다. 바쁜 대입입시 준비로 고전을 온전히 다 독파하기 힘든 학생들이 고전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할 것이다. 개인 인생사와 관련해 이 저서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는 말했지만, 여전히 이 저서를 집필하게 된 나만의 문제의식은 말하지 않았다. ‘민주’ 개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서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이 용어가 갖는 혼란 내지 혼동 때문이다. 민주 혹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 속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 그것은 또한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난할 때도 자기를 내세울 때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주저 없이 사용한다. 또한 뭐가 민주주의인지 나름대로의 생각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뭐든 좋은 것이 다 민주주의이다. 이들은 별도로 설정된 좋고 나쁨의 기준에 따라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은 속성은 다 민주주의라는 항아리에 집어넣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절대로 나쁠 수 없는 성스러운 어떤 것이다. 그것은 독자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존재와 같다. 또한, 나라 경제정책에 대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하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일반인들이 많지만, 정치영역에 속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시정잡배들도 주저 없이 입에 침을 튀기며 마치 자기가 전문가인 양 떠들어댄다.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이러한 대중적 친숙성과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나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답하라고 요청을 받는다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것도 민주주의, 저것도 민주주의라는 식의 답이 아니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에서 ‘민주’와 ‘공화’ 각각의 의미를 말해보고 그 둘 간의 관계를 말해보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두 개를 막연히 같은 말로 알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에 공화와 민주가 같은 의미라면 우리는 왜 굳이 최고 법령인 헌법, 그것도 그토록 중요한 제1조에서 동어반복적인 말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어반복이 아니라면 결국 민주라는 단어는 공화라는 단어와 별개로 설명되어야 한다. 또 다른 예로는 헌법의 전문에서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로 강조되고, 정당조차도 해산할 수 있는 명분이 되는 ‘자유민주’라는 용어도 우리의 혼란을 야기하는 말이다. 정치학자든 일반인이든 민주주의를 자유와 결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아시아 바로미터 조사(Asian Barometer Survey, 2006)를 보면 민주주의를 자유라고 정의한 답변들이 제일 많다. 그렇다면 왜 자유주의를 기본질서라고 하거나 민주주의를 기본질서라고 하지 않고 자유민주를 기본질서라고 했을까? 헌법을 작성한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더 찾아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이러한 용어는 자유민주가 아닌 다른 민주가 있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가정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유민주라는 말을 하겠는가? 단순히 자유나 민주로써 충분한데도 말이다. 이렇게 민주, 공화, 자유가 서로 연관되면서 혼동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라는 말 자체도 어떤 이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 혹은 이상이며 지금은 불완전한 민주주의 단계이고 우리가 뭔가 더 해야만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민주주의는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와 같은 다른 종류의 이데올로기들과 경쟁하는 어떤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이해하면 각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지고지선(至高至善) 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민주주의가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또 다른 이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러한 이념 내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정치를 하는 어떤 방식 내지 정부를 구성하는 어떤 방식으로서 체제에 가깝게 이해한다. 이런 식으로 이해된 민주주의는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보다 더 구체적이며 손에 잡히는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정치형태 중 어떤 것이 민주주의인지 아닌지 보다 용이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민주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또 다른 이는 그것은 단순히 공동체의 의사결정방식으로 다수결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것은 인간 행위의 어떤 한 방식에 불과하며 굳이 정치나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적어도 3명 이상이 모여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한 가지 방식을 다수결로 정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할 때, 적어도 이 3가지 중 하나에는 보통 속한다. 어떤 이는 이 3가지가 다 그게 그것이라는 식으로 애써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사용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내포적 의미를 정의할 때 다수결 말고 이른바 ‘자치’ 혹은 ‘자기지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세밀히 들여다보면 매우 공허한 용어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사는 무수한 개인들은 완전한 독립체일 수가 없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타자로부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이 자치를 하려면 계약론에서 말하는 자연 상태이거나 아니면 무정부상태여야만 한다. 따라서 공동체 속에 사는 이상 개인적인 의미에서 자치나 자기지배는 불가능하다. 뒤집어 말하면, 어떠한 형태의 정치체제도 모두 자치는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타자의 지배이며 다만, 이 타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또한, 집단차원에서도 흔히 지방자치 정부라는 말이나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역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중앙정부가 위임한 부차적인 권한이나 세세한 민생 관련 사항들을 해당 집단 단위가 중앙정부의 간섭 없이 처리한다는 의미라면, 이러한 자치개념은 원천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자치이다. 여기서 자치의 개념은 따지고 보면 중앙정부라는 외부집단에 의한 간섭의 정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중요한 다른 정치적 용어와의 경계선이 모호하거나 그 자체의 내부 속성조차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해방 후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글에서도 민주주의를 스핑크스에 비유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스핑크스’다. 나의 소관으로는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진정한 ‘데모크라시’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영국 사람은 ‘데모크라시’라고 해도 별로 신기로워 하지도 않고, ‘데모크라틱’하지 않은 일을 척척해도 무방하고 또 그리함으로서 잘 살고 있는 소련 사람은 대체로 ‘데모크라시’라는 것을 모르고도 진보적인 ‘데모크라시’ 간판을 세계에 내걸고 있어 ‘데모크라시’가 세계의 유행이 되고 있는 판국이다. 이 땅 조선에도 ‘데모크라시’가 아닌 일을 척척하면서 세계에서 ‘데모크라시’란 말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되어 ‘데모크라시’가 실천되기 전에 ‘데모크라시’가 민중에게서 의심을 받게 되었다(김광섭 1947).” 해방 이후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아주 많이 사용했나 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때와 달리 용어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데모크라시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도 좋은 어떤 것으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어떤 것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전혀 합의가 없는 것은 아주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러한 개념의 오늘날 혼란이나 난잡함은 기나긴 역사를 통해 이 단어가 탄생할 때부터 지금까지 의미의 변천을 되짚어볼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가 너무 다양한 것은 그 단어가 갖는 고전적 의미와 그 이후 정치적 현실의 변화에 의해서 추가로 채색된 의미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저서에서는 민주 개념의 고전적 의미를 다시 재조명해 보고 후세대가 덧칠한 부분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러한 덧칠이 어떤 맥락에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현재의 통념을 넘어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민주 개념을 모색하는 데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저서는 서양 민주 개념 통사 중 고대편만 다루게 되지만 이 통사는 후속편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다음 편에서는 근대 사상가들인 홉스, 로크, 루소, 몽테스키외와 보다 현대적인 민주 개념을 정립한 슘페터 등을 다룬다. 한편, 홉스의 주권과 위임 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보다 앞선 사상가인 보댕(Jean Bodin)의 주권 개념과 국체와 정체 구분론에 관해서 예비적으로 먼저 고찰할 계획이다. 모든 통사와 마찬가지로 이 통사 역시 선택적 논의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민주 개념을 이야기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제외하고 누군가는 포함하여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선택의 기준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민주 개념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선정해 다루어 보았다. 아무리 명망이 높은 사상가라도 민주 개념 자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논의가 없거나 민주 개념사에 특별한 기여가 없는 사람들은 제외했다. 민주 개념 통사는 서양사상 일반 통사의 일부이다. 따라서 완벽한 민주 개념 통사는 나의 서양사상 전체에 대한 온전한 연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지식은 여전히 불충분하기에 다른 저자들이 쓴 일반통사들을 참고해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거나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통사에는 W. A. Dunning의 A History of Political Theories(MacMillan Company, 1930), G. H. Sabine and T. L. Thorson의 A History of Political Theory(Oxford & IBH, 1973) 그리고 L. Strauss and J. Cropsey 편저서인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Univ of Chicago, 1981)가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사의의 말씀을 드리고 맺고자 한다. 여기서 저자로 표기된 이는 나 혼자이지만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지는 못한다. 14년 전 시작부터 출간까지 직접으로나 간접으로 기여한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 나는 비인기과목인 <정치학고전원서강독>을 수강해 나에게 사소한 철자 교정에서부터 민주 개념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의 원동력까지 제공하여 준 수많은 학생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2020년 2학기에 초유의 코로나 전염병 공포 속에서도 일부나마 세미나와 워크숍 형태의 교실수업을 수강하면서까지 초고에 대한 단순 교정과 수정제안 및 논평을 해준 학생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이들 학생들에 더하여, 나의 한국연구재단 개인 및 공동 연구과제에 참여하여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원고 교정 작업 과정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준 건국대 김한울과 이선영, 이화여대 송지원, 서울대 박광훈과 정현직 학생에게도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박사학위 제자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문은영 박사가 원고 전체를 꼼꼼히 읽고 재교와 최종 편집 작업을 도맡아주었기에 원고의 완성도가 높아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물색하던 중에 박영사가 이번 저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예정인 나머지 두 권 역시 출판을 맡아주기로 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다른 출판사와 달리 저자에게 많은 재량을 준 출판사 방침을 높이 사고 싶다. 계약부터 최종편집 및 발행까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박영사 직원들, 특히 정연환 대리와 편집팀 탁종민 대리와 최은혜 씨에게 감사한다. 끝으로 1980년대 중반 서울대 입학 후 암울한 학내 상황 속에서 진로를 고민할 때 많은 도움말을 주시고 정치학 고전을 선정해 읽게 하고 개인적으로 학문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황수익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마음의 빚을 덜고 싶다. 이 저서는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과제번호: NRF-2018S1A5A2A01029039)을 받아 수행되었음을 밝힌다. 모든 장이 연구재단 지원으로 새롭게 작성된 것이며 기존에 출판된 적이 없는 원고이다. 연구재단이 다년도에 걸쳐서 꾸준히 재정지원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이런 지난한 연구를 끝까지 마무리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것은 또한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알기에 납세자들에게도 결국 신세를 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원고를 쓰는 동안 코로나 사태로 휴가도 없었던 갑갑한 나날을 견뎌내 준 식구들과 거명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많은 분들께 신세를 졌다. 부족한 부분이나 오류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책임은 저자가 지고, 도서에 관한 논평은 어떤 식으로든 환영하면서 서문을 맺고자 한다. 2021년 8월 15일 건국대 일감호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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