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발표했거나 단행본의 해설로 수록했던 글을 정리해 하나의 책으로 묶는다. 오랜 시간 띄엄띄엄 방향 없이 걸어온 흔적들이라 수습이 어려웠다. 시를 쓰고 문학을 공부하면서 줄곧 시적인 것에 대해 고민했다. 시의 본질이라니. 이 어리숙한 질문은 개념과 체계를 얻지 못한 채 여전히 이 책의 활자들 사이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이론이나 담론에 기대지 않고 시 자체를 꼼꼼하게 읽는 것이 이 책의 방법론이다. 작품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의 좌표를 그리기보다 텍스트에 새겨진 시인의 경험과 직관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에 집중하고자 했다. 명명에 미숙하고 분석보다 해석이 우세한 것은 비평의 안목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나마 좋은 시들을 만나 다행이었다. 이 책에서 볼 만한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시인들의 혜안과 언어에서 파생된 것이다.